김호림 칼럼니스트
김호림 칼럼니스트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고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 1780∼1831)는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 주장했으나, 인류 역사에서의 수많은 전쟁은 반드시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은 "자아가 이성적인 목적을 잊어버리고, 자존심이 모든 것을 지배하며, 감정이 우선하고, 본능이 절대자 노릇을 하는 자리이다"라는 존 키건(John Keegan, 1934∼2012)의 「세계 전쟁역사」에서의 설명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푸틴의 숨겨진 의도는 무엇일까? 저명한 국제정치전문가들의 통찰력 중에서 스탠포드대학의 캐서린 스토너(Kathryn Stoner)교수의 분석이 날카롭다. 그녀는 이번 전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러시아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이 아니라,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는 우크라이나가 민주국가로 독립을 유지하는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실존적 위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우크라이나 체제가 러시아 국민에게 선망의 대상이 돼 마침내는 그들의 민주주의 요구 분출로 푸틴은 권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목표는 독재국가인 러시아와 중국이 서방의 자유주의 패권에 도전해 세계를 다극 체제로 구축함으로써 힘이 곧 정의일 뿐, 개별 국가의 주권과 개인의 권리와 자유 그리고 인권으로 대표되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잘못된 개념임을 알리려는 것이다. 

그러면 푸틴의 ‘특수군사작전’은 전략과 전술 면에서 한 치의 착오가 없는 올바른 정보 판단에 근거했을까? 러시아는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려고 했으나, 한 달이 넘게 지속되는 전쟁의 양상은 엄청난 계산 착오였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러시아 군대의 능력을 과신했고,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과 서방 세계의 대응 강도를 예상하지 못하는 전략적 실수까지 저지른 것이다. 

그들에게는 왜 정확한 정보가 소통되지 못했을까? 서방의 러시아 정보분석가들은 푸틴이 자기가 만든 ‘폐쇄세계’의 함정에 빠졌다고 추리한다. 외부에서 제시하는 다른 대안은 전혀 고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와 다른 생각은 그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므로, 러시아 정보기관은 침공 전에 단지 장밋빛 승리의 청사진만 전했을 것이다. 결국 푸틴의 자존심, 감정 우선과 본능이 이성적인 목적보다 앞섰다면 이는 오만한 오판으로 전쟁을 감행했을 개연성이 높다. 

이 같은 푸틴의 침공 오판이 초래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세계를 바꿔 놓았다. 우리가 이제 새로운 냉전의 위험에 노출된 전환기 시대를 살게 됐다는 것이다. 우선 유럽 국가들의 변화다. 독일은 국방비를 2배로 증가시키기로 했고, 유럽의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의존하던 에너지 비중을 낮춰 없애기로 했다. 지정학적으로는, 푸틴은 1945년 체결된 ‘얄타 협정’의 영향력을 복원시키려는 목적으로 동유럽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 한편, 핀란드와 스웨덴은 이번 사태를 거울 삼아 유럽의 독립 주권 국가들이 자유롭게 동맹을 선택하도록 허용한 1975년의 ‘헬싱키 최종법령’에 따라 나토 가입 의사를 밝혔다. 이 뿐 아니라 러시아의 이번 침공을 규탄하는 국제 제재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국가와 기업의 수와 속도, 범위와 규모가 어느 때보다 많고, 빠르며, 강한 것이 푸틴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이다. 여기에는 러시아와의 수출입을 제한하고 금지하는 통상 부문과 현지에 진출한 기업의 사업 철수 등 해외직접투자를 규제하는 경제제재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흉악한 강대국을 이웃으로 한 국가의 비참한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역사에는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가 구소련으로부터 독립 당시 그 지역에 구축된 핵시설을 지금도 보유하고 있다면, 아니면 나토에 가입하는 조건이나 서방으로부터 확고한 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난 후 핵을 제거했다면 오늘의 전쟁참상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행인 것은 우리에겐 한미방위조약이 체결돼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처럼 나라를 지킬 결기가 과연 우리 스스로에게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런 결기와 분투가 있어야 동맹국이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다. 평화는 선언으로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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