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스 스릴러와 동의어로 인식되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이름 자체가 해당 장르를 대변한다. 영화 역사상 최초의 스타 감독인 그는 상업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영화의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탄탄하게 구축한 작가감독으로 평가받는다. 히치콕식 공포는 황량하고 황폐한 공간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번화가, 내 몸을 누일 안락하고 편안한 방과 같은 일상적인 장소에서 발생한다. 익숙한 공간을 일순간 혼돈과 두려움의 장소로 변화시키는 히치콕의 탁월한 솜씨는 언제 봐도 놀랍다. 

히치콕은 이런 성취를 알마와 나눴는데, 알마 레빌은 히치콕보다 5년 먼저 영화계에서 커리어를 쌓은 선배로 시나리오 및 편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히치콕이 미술감독에서 영화감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났다. 신인 감독인 히치콕은촬영장을 진두지휘함에 있어서 알마에게 크게 의존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히치콕 감독은 1979년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을 당시 자신이 조언을 구하는 사람으로 "편집자, 각본가, 제 딸의 엄마이자 부엌에서도 기적을 일으키는 자, 이는 모두 한 사람인 제 아내 알마 레빌입니다"라고 언급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영화 ‘히치콕(2012)’은 감독의 대표작인 ‘사이코(1960)’의 제작 과정을 재조명한 작품으로, 알마와 히치콕의 관계를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1959년 히치콕은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흥행 성공으로 기뻐할 새도 없이 다음 작품을 물색한다. 환갑이라는 자신의 나이를 언급하는 미디어에게 보란 듯이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었던 그는 2년 전인 1957년, 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엽기 살인마 ‘에드 게인’의 스토리를 각색한 영화 ‘사이코’의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간다. 아내 알마의 도움으로 시나리오를 탈고한 그는 뜻밖에도 제작사를 구하지 못해 난항을 겪는다. 이유인즉,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까닭이었다.

이에 굴하지 않았던 히치콕은 결국 자신의 집을 담보로 영화 제작을 감행한다. 모든 것을 걸고 영화를 제작하던 히치콕은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어려움을 맞닥뜨린다. 언제나 헌신적으로 자신을 도왔던 알마와의 갈등이었다. 히치콕의 금발 미녀를 향한 오랜 연모는 유명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에 알마는 남편이 거슬려 하는 다른 남성과 시나리오를 쓰며 일탈 아닌 일탈을 벌인다. 급기야 히치콕은 영화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박과 아내가 멀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 등의 압박으로 고열에 시달려 촬영이 중단된다. 설상가상으로 영화 배급사는 감독을 교체하려는 시도를 벌인다. 이때 감독 위의 감독이라 불린 알마가 촬영장에 복귀하면서 남편을 대신해 현장을 훌륭히 통솔한다. 이후 편집에 있어서도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샤워장 신’의 긴장감과 템포를 높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영화 ‘사이코’는 현재 우리가 기억하는 전설적인 작품으로 완성된다.

영화 ‘히치콕’은 서스펜스의 제왕이라는 감독의 커리어를 완성하는 데 있어 커다란 역할을 한 알마 레빌에게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다. 히치콕의 영화인생에 평생 동행한 알마 레빌은 더 이상 숨은 조력자나 아내가 아닌 훌륭한 작가이자 편집자로 기억하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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