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하향 조정했다. 정부(3.1%)와 한국은행(3.0%), OECD(3.0%) 등의 전망치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치다. 통상적으로 IMF 전망치가 ‘조정의 참고 기준’이 되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연쇄적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상가상 중국 봉쇄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글로벌 공급병목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이 배가되는 형국이다. 해외의존도 높은 나라로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다.

문제는 이런 위기가 구조적이고, 장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는 20일 인사청문회에서 "청년 실업과 노인 빈곤, 소득 양극화, 고령화와 같은 구조적 문제가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정확한 진단이다. 그런데 이 후보자가 지적한 내용은 기시감이 드는 낯익은 분석이기도 하다. 일본이 걸어왔고, 지금도 걸어가는 그 길(잃어버린 30년)과 너무 흡사하다.

물론 양국 간 현실은 다르다. 엔화는 국제결제 수단으로 통용되지만 원화는 그렇지 않다. 만성적 저성장과 재정적자가 지속될 경우, 한국 경제는 디폴트를 회피하지 못하고 고통스런 경제난과 민생고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기초체력은 일본보다 더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더 빠르고, 노동생산성도 더 안 좋으며, 북한이라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까지 상존한다. 이런 상황에선 재정여력이 방패막인데, 이마저도 지난 5년간 빠르게 소진됐다. 완화적·확장적 정책이 얼마나 부질없는 지는 일본을 보면 안다.

일본은 기축통과국의 위상을 십분 활용, 끊임없이 엔화를 찍어내며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성장률 개선은커녕 천문학적 빚만 떠안은 거대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급기야 마지막 보루인 무역수지까지 8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이 됐다. 모두가 정공법이 아닌 손쉬운 길을 택한 후과다. 정치 괴변과 포퓰리즘을 벗어던지고 시장 경제원리에 입각한 정책을 추진해가야 한다. 규제 철폐와 노동유연성 제고, 혁신생태계 조성, 재정 구조조정 등 구조개혁만이 근본적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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