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교수
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교수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여전히 암담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장기화 추세로 세계 정세는 더욱 불안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새로운 ‘냉전 시스템’의 전조가 명징해져 간다.

이번 전쟁뿐만일까? 오랜 역사 동안 우리 인류는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탄압, 고문, 약탈, 학살 등의 참혹한 폭력을 줄기차게 자행해왔다. 인간의 폭력성과 잔혹성, 배타성, 광기, 불평등의 역사가 이어진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우리의 조상인 사피엔스가 같은 유인원인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살아남은 ‘형제 살해범’임을 밝혔다. 3만 년 전에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마주친 결과는 틀림없이 역사상 최초이자 가장 심각한 인종청소였을 것이다.  인류의 악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모양이다.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원래 아프리카의 한구석에서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을 쓰는 별 시답지 않은 동물이었다. 그런데 이후 몇만 년에 걸쳐, 이 종은 지구 전체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가 됐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영원한 젊음을 얻고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권능을 가질 만반의 태세를 갖춘 ‘호모 데우스’가 되려 한다.

불행히도 지구상에 지속되어온 사피엔스 체제가 이룩한 것 중에서 자랑스러운 업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주위 환경을 굴복시키고, 식량 생산을 늘리고, 도시를 세우고, 제국을 건설하고, 널리 퍼진 교역망을 구축했다.

그런데 인간의 역량이 크게 늘어난 만큼 세상의 고통의 총량이 줄었을까? 다른 지구상의 생명체들에게는 큰 불행을 야기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의 불평등한 삶조차도 개선 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호모 데우스가 만드는 미래의 인류 불평등은 기존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변해갈 것이다. 농업혁명 이후 잉여생산물이 생기면서 계급이 형성된 것을 보면, 불평등의 역사는 실로 오래됐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제나 존재했다.

기존의 불평등은 인간이라는 종 내에서의 불평등이다. 왕과 거지, 부자와 빈자, 사장과 종업원의 격차가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한갓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이다. 하지만 미래의 불평등은 다르다.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미래에 계급을 가르는 기준은 데이터가 될 것이며 이는 인간 종의 한계를 벗어난 수준의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 데이터를 소유한 사람이, 뇌를 업그레이드 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수준을 넘어 영생의 단계에 이르는 것은, 불평등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유쾌한 상상은 아닐 것이다.

21세기에는 데이터를 가진 자가 미래를 독식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부의 불평등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경제 불평등이 생물학적 불평등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이런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미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사망률이 높다. 물론 사망률 100%가 인종이나 계층 차이가 아니라고 해도 취약계층은 분명히 백인보다는 흑인과 멕시코인들이라는 것이다. 부자들이 육체와 두뇌까지 증강할 수 있게 되면 물리적 빈부의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결국 소규모의 슈퍼 휴먼 계층과 쓸모 없는 호모 사피엔스 대중으로 분화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데이터는, 인간 생체에 관한 데이터일 것이다. 미래에는 은행 계좌나 컴퓨터를 해킹하는 것이 아닌, 사람의 생체 데이터를 해킹하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체 데이터의 잠재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직 중국만이 큰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현재 막대한 데이터를 보유한 미국 회사들의 관심은 사람들이 무슨 물건을 사고, 어떤 것을 검색하고,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는지 따위에 치우쳐있다.

생명공학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것은 구글 정도다. 개인정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서구권에서, 생체 데이터를 민간 기업이 소유하는 것은 민감한 이슈고 반발하는 단체도 많아 사업화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하지만 국가의 목적을 위해, 개인정보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는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이미 14억 중국 인구의 안면 인식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기본 작업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정부의 명분은 생활의 편리와 범죄의 근절이지만, 21세기 빅브라더와 같은 체제 안정과 일상의 감시가 주된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개인의 생체 데이터를 정부가 소유한다면? 출생신고를 하듯, 신생아의 세포 샘플 채취를 의무화하고, 이를 통제하고 관리한다면?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자들을 납치, 감금 및 고문하는 것이 아닌 이들의 생체 데이터를 조작해 피 흘리지 않고 제거하는 것이, 식은 죽 먹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데이터의 시대에 인류는 두 부류로 나뉠 것인데, 자신을 잘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자신을 잘 아는 자는 데이터의 주인이 될 것이고, 자신을 잘 모르는 자는 데이터의 노예가 될 것이다. 전자는 자신의 판단에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좀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알고리즘이 제시한 맞춤형 솔루션에 근거해 꼭두각시 같은 삶을 살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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