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러·우 전쟁이 2단계로 진입한 가운데 노엄 촘스키 MIT 명예교수가 반전 지식인답게 최근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두 가지 선택지’로 협상에 의한 해결과, 끝까지 싸우는 것이라면 자칫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여 화제에 올랐다. 

그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큰 용기를 보여줬지만 세계의 현실에도 주목할 수 있다면서 미국이 전투기와 고성능 무기를 제공할 수 있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격을 강화하고 모든 걸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 

결국 협상을 통한 해결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는 푸틴과 소수의 측근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라며 기본 틀은 우크라이나 중립화, 우크라이나 연방 구조 내에서 돈바스 지역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좋든 싫든 크림반도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해결 방안은 푸틴의 입장을 강화시켜주는 듯하지만 미국에도 크게 나쁘지 않다는 데서 관심을 끈다. 서방국가들이 러시아를 비난하고 제재하면서 베이징과 모스크바가 긴밀한 동맹관계를 갖게 하는 것이 국제사회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미국 주도의 제재로 나토가 단결했고, 미국에 대한 유럽의 안보 의존도가 크게 높아진 것을 두고 미국에 유리하다고 보는 쪽이 별로 없다. 오히려 미국의 1순위 경쟁국인 중국에 한숨 돌릴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줬고, 더 적극적으로 러시아 편을 드는 입장이 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중국은 이번 기회에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려 미국을 몰아붙이고 있다. 국제사회가 화해와 대화를 유도하고 대규모 인도주의적 위기를 막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에 미국의 대결주의를 은근히 비난하기 위해서라는 의도가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화상 통화에서 ‘국가 관계가 전쟁으로 가서 안 되고 충돌과 분쟁은 누구의 이익에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에 전쟁 물자를 대주는 미국은 싸움을 조장하는 세력이고, 중국은 평화를 지키려 노력하는 세력이라는 투다.

이미 밝혀진 바로 중국의 걱정은 명료하다. 만일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크게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이건 최악의 결과다. 

미국과의 대립에서 완충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렵겠으나 자칫하면 미국의 모든 힘이 중국을 압박하고 봉쇄하는 데 집중될지 모른다. 이렇게 되면 대만도 중국에 대항할 수 있다는 시범 효과를 줄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자유 세력과 전제 세력의 투쟁으로 만들고 있다. 러시아의 만행이 부각될수록 중국이나 북한 등 전제 세력은 도덕적 우위를 잃게 될 것이다. 중국이 대외적으로 선전해온 ‘중국 모델’과 ‘인류 운명 공동체’ 개념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중국으로서는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실상 중국 내에서 민심의 흐름도 그동안 모스크바 지지파와 우크라이나 지지파로 크게 나누어져 있었다. 모스크바 지지파는 나토의 세력 확대로 인해 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자구책으로 싸움을 시작했다고 여기며 미국의 호전주의적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고 보는 것. 우크라이나 지지파는 전쟁이란 최악의 상황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데 러시아가 약한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갔으므로 잘못됐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이런 민심의 흐름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초기에 대략 모스크바 지지파가 3분의 2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거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통제되는 사회의 조사이므로 믿기는 어렵겠으나 아무튼 중국 정부나 민심이 러시아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건 분명하다. 

아마도 ‘푸틴은 더 이상 권력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모스크바의 최고권력자를 미국의 입맛대로 끌어내릴 수는 없는 일이겠으나 혹여 이 발언이 실현된다면, 중국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진핑 주석이 대놓고 모스크바를 옹호하여 나토의 확대를 반대하면서 ‘러시아와의 우호에 한계가 없고 협력에는 성역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 역시 바이든의 강경주의가 초래했을 수 있다. 촘스키 교수의 협상 해결책은 이런 의미에서 새 돌파구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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