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에 있어서 1930~1950년대를 클래식 할리우드 시기라 한다. 영화 속 세계는 대체적으로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으로 종결되는 이상적인 세상을 그렸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카사블랑카(1943)’, ‘로마의 휴일(1953)’, ‘벤허(1959)’ 등이 클래식 할리우드의 대표작이다. 이런 흐름은 1960년에 접어들면서 달라진다. 당시 주류 관객이던 청년들은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분위기로 점철된 낙관적인 영화를 원하지 않았다. 현실과는 무관한 낭만적인 고전 할리우드는 어느덧 아버지 세대의 영화가 됐다. 

이는 당시 사회 분위기와 맥을 같이하는데, 1960년대 미국은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와 흑인·여성을 향한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민권 운동이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저항 운동을 주도한 청년세대의 등장으로 미국 내 세대 교체가 이뤄졌고, 이들의 출현은 자연스레 새로운 스타일과 미학을 담은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견인했다. 명칭에서 나타나듯 아메리칸 뉴 시네마는 기성 할리우드와는 결이 다르다. 영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되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적 실험도 나타나게 된다. 1967년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새로운 감각의 뉴 시네마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1930년대 텍사스의 작은 마을에서 웨이트리스로 살아가는 보니는 매일이 따분하기만 하다. 갓 출소한 클라이드는 돈이 필요해 절도 행위를 벌이던 중 보니에게 발각된다. 그렇게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무료한 일상에 염증을 느낀 보니는 자유로운 클라이드를 따라 나선다. 총을 들고 무장한 두 사람은 생필품은 마트에서, 차량은 길가에서 탈취하며 지역을 떠돈다. 급기야 은행 강도 행각까지 벌이는 이들은 세력을 확장해 5명이 함께 다니며 ‘배로우 갱(Barrow Gang)’이란 이름으로 유명세를 떨친다.

공권력을 비웃듯 보니와 클라이드는 자신들을 잡으려는 경찰관을 역으로 체포해 기념사진을 찍어 신문사로 보내고, 보니가 쓴 자작시를 언론에 발송하기도 한다. 은행 강도를 벌이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지만 가난한 농부의 돈에는 손을 대지 않는 모습에서 일정 부분 대중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내일이 없는 이들은 삶은 결국 좁혀 온 수사망에 걸려 끔찍한 최후로 마무리된다.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에 실존했던 유명한 2인조 은행 강도단인 보니와 클라이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 영화는 일부 관객과 평단에게는 지나친 표현 수위로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타임지는 ‘폭력, 성(性), 예술. 할리우드 마침내 자유로워지다’라는 평가를 남겼다. 이 영화는 삶을 미화하지 않았고 폭력과 성에 대한 표현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투박하고 거친 측면이 있지만 관습적인 서사와 영상 문법에서 벗어난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는 기존 영화의 한계를 깨트린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신호탄이 됐다. 이 혁신적인 영화 흐름은 비록 1970년대 후반 종언을 맞이하지만 다양한 주제와 스타일로 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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