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중동 아라비아반도의 산유국 카타르는 올 11월부터 FIFA 월드컵을 치른다. 그 나라 국립박물관은 겉모습만으로도 세계적 관광 명물이란다. 바로 ‘사막장미(Desert Rose)’를 모티브로 해 지어졌기 때문이다. 장미꽃 모양을 살리기 위해 316개의 원형판이 들어갔으며, 약 7년 반이 걸려 완성됐다. 현대건설의 작품이다. 

사막장미는 이름이 낯선 만큼, 나의 시 창작 제재로 일찍이 메모돼 있었다. 그런데 생화(生花)로서 사막장미라 불리는, 다육성 화초 아데니움(Adenium)이 아니다. 그것은 통상의 장미꽃과 모양이 사뭇 다르다. 여기서는, 오랜 세월 사막에서 장미꽃 모양으로 절로 굳어진 돌을 말한다. 돌로 된 꽃이라는 뜻에서 ‘석화(石花)’라 불러본다. 표면에 모래 가루가 붙여져 더 아름다운 결정체-사랑과 지성, 행운을 상징하는 소원석이며 희귀한 선물용 장미석이라니 사막이 없는 우리로서는 퍽 색다르다. 보통 지질시대 동식물의 유해가 그대로 보존된 상태를 화석(化石)이라 한다. 이와는 다르지만, 사막장미는 돌로 고형화된 것이니 일종의 자연 ‘조형화석’이라 일컬어 본다. 이런 사막장미를 대하면서 언뜻 떠오르는 것은 ‘기다림’이라는 교훈이었다.

"온갖 이파리들이 앞다투어 피어 서로 신록을 자랑컨만/ 우직한 오동잎은 입하가 다 되어서야 새 움을 틔웁니다∥ 뭇새들이 아침나절부터 숲속 예제에서 울어 반란컨만/ 접동새는 날이 저물고야 달빛을 토하며 울어옙니다∥ 이 세상은 언젠가 끝날지도 모르는 그날까지/ 맨 먼저 최고로 앞서야만 하는 끊임없는 경염장(競艶場)∥ 이런 때 담장 밑 골담초 더미 속에서/ 노오란 꽃잎이 어느 누가 보든 말든 피고 지듯이∥ 뒤처져 움을 틔우고 울어예는 민초들이/ 사무치게 아름답습니다∥ 관중도 다 떠난 어스름에/ 홀로 홈그라운드를 들어서는 마지막 마라토너처럼∥ 눈물겹도록 그립습니다." 나의 졸작 자유시 ‘뒤처짐의 미학’ 전문이다.

여기 ‘뒤처짐’은 ‘기다림’의 겸양된 표현이다. 급히 앞서 가고자 하는 이를 위해서 일부러 뒤처지는 것이다.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는 우리에게 이제 양보와 겸양의 미덕이 더 퍼져야 한다. 또한, 이 기다림에 바로 연결되는 광경은 저 신라 중엽 박제상 처의 망부석 사연이다. 지금의 경주와 울산의 경계 마루 치술령에 올라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목숨 바쳐 굳어져 버린 그 바위-이것도 말하자면 자연 조형화석이며, 아울러 ‘긍정적 석화’라 할 수 있다. 

영국 가수 스팅(Sting)은 사랑과 타락이라는 양면성으로 사막장미를 노래했다. 사막의 불볕과 욕망을 잠재울 비를 꿈꿨다. 이처럼 사막장미에는 평소 기다림을 견디지 못해 벌어질 반대 상황도 들어있다. 조급하거나 의심이 많은 경우가 그럴진대, 이를 ‘부정적 석화’라 하겠다. 구약 성경에 소돔성을 탈출하던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경고를 거슬러 소금기둥으로 변한 사례가 그것이다. 

앞글 카타르 국립박물관의 경우는 긍정적 석화에, 올 초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인명 매몰사고의 경우는 부정적 석화에 비유할 수 있다. 같은 범현대가(家)의 건설회사임에도 현대건설은 2019년 3월 카타르의 랜드마크나 다름없는 빼어난 건물을 준공한 반면, 현대산업개발은 화정동 아파트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어찌 국내외 건설현장에 따라 국외는 불후의 명품을 선보이는데 국내는 불량 건물을 지을까. 필시 윗물부터 맑지 않기 때문이라. 사고에 얽힌 부패 고리로 악취가 날 것 같다.

이제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제한이 완화되자 전국이 밀린 늦봄 축제 행사로 활기를 띤다. 온갖 꽃들이 경쟁이나 하듯 빛깔과 냄새로 눈코를 현혹한다. 초여름철 신록 만물이 생장 속도를 높인다. 생화 장미는 제 한철 화려하지만, 사막장미는 비록 석화라도 오래오래 아름답게 빛난다. 바야흐로 여야 정권이 교체되면서 새 정부가 출범했다. 그저 서민들이 기쁘고 편해야 한다. 사막장미 같은 기다림의 미학이 활짝 피기를 기대하며 시조 올린다.

# 사막장미(Sand Rose)

 얼마나 그리우면
 모래로 핀 장미런가
 
 熱沙(열사)를 헤집고서
 맺혀 올린 사랑이여
 
 망부석
 그 절절한 넋이
 온 사막을 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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