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철 인천행정동우회 기획정책분과위원장
최계철 인천행정동우회 기획정책분과위원장

걸레스님 중광은 춤을 많이 췄다. 참으로 고독해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춤을 췄다. 그 무아지경에서 무엇을 잊고 싶었을까. 무엇을 감추고 싶었을까. 혼자나 둘이 있을 때는 그렇게 진지하다가도 여럿과 섞이면 술을 마시고 춤을 췄다. 더워지면 옷을 벗고 질탕한 춤사위에 놀아났다가 승방에 돌아오면 예외없이 극도로 차분해져 좌선을 하고 새벽까지 붓을 들어 달마를 그렸다.

그의 춤은 속가의 남은 연(緣)을 떨어내는 것이었고, 흔들리는 자신에 대한 처절한 반항이었다. 무애의 자유를 찾는 수단이었다. 그래야 달마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살활(殺活)이 자재해져야 중광만의 달마를 그릴 수 있었다. 특히 달마의 눈은 일월(日月)이니 마음을 깨끗이 정돈하지 않고는 함부로 점정(點睛)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천재와 광대는 형제지간이라는 말이 있다. 깨달음의 정도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와 같이 깨끗한 경지에 도달한 상태가 적나라(赤裸裸)이다. 광대의 춤이나 천재의 춤이나 모두 적나라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선무(禪舞)가 아니고 무엇이랴.

중광은 선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무를 나는 참으로 모른다. 그러나 모르고 있는 것만은 알고 있다. 북, 장고 소리가 더덩더덩 흘러나오고 거문고, 가야금, 대금소리가 오장육부를 오려내는데~ 산천초목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어찌 사람은 하물며 미물에까지도 어깨, 팔다리가 가만히 있겠는가. 

이 마음이 선이며 이것이 법이다. 율동(기예) 승화가 무라 하겠다.

더 나아가서 선무란 언어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문자를 빌리면 깊은 내심의 순수한 세계에서 모든 격조를 초월한 무아경에서 자유자재하며 형식과 속기(俗氣)와 기공(技功)을 모두 벗어버린 생명이 철철 넘치는 춤을 선무라고 하고 싶다.

이쯤 되려면 더 설명할 수 없고 더 깊이 물어온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당신들이 어떤 공부든 간에 참으로 두서너 번쯤은 미쳐 봐라. 그러나 영영 미쳐 버리진 말고. 미쳐 본 사람만이 미친 사람의 심정을 알리라. 어찌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지구란 무대에서 한바탕 울긋불긋한 선무를 추고 사라져 가면서도 모르고 있을지 모른다."(1978년 11월 11일 고중광 스님)

언제부터 중광이 양아들이라 했던 도신스님의 노래를 듣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어린 8살에 절에 맡겨졌다. 여동생 셋은 외국으로 입양됐다. 수행하는 스님의 노래라서 그런가. 들을 적마다 가슴이 젖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선은 정신적인 수행이다. 선무는 선을 잘할 수 있도록 기와 혈을 풀어주는 심신 수련법이다. 

수행한 자들은 말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나 노래가 말하는 것인가. 중광은 춤과 그림으로, 도신스님은 노래로 선을 지향한 것이리라. 수행하지 않고 추는 스님의 춤은 그냥 춤일 뿐이다. 수행을 하지 않고 부르는 스님의 노래는 그저 노래일 뿐이다.

돌아가신 중광스님은 묻는다. 너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중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스님의 말씀대로 지금 지구란 무대에서 한바탕 울긋불긋한 선무(?)를 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나이를 먹도록 격식이나 틀로 강요된 춤이 아닌 자유자재(自在)의 춤을 몇 번이나 췄는지, 또 추게 될지 여전히 서글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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