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황해도 사리원 자료를 검색하다 황해도 소주 생산량의 절반이 봉산군에서 만들어진다는 조선신문 1928년 9월 11일자 기사에 눈이 갔다. 세금납부액이 많은 소주산업은 생산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을 사료로 사용해 축산업 활성화가 가능하고, 비료가 되는 가축분뇨는 농업을 발전시킨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사 말미에서는 생산 방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평양의 오히라(大平), 인천의 아사히(朝日), 부산의 마스나가(增永)를 언급했다. 당시 이 회사들은 당밀(糖蜜)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주정식(희석식) 소주 공장으로 최신 발효 방식을 이용해 저렴한 소주를 출시하고 있었다.

기사가 언급한 회사는 당시 대표적 소주 회사로, 우리나라의 전통적 소주 제조 방법 대신 대량생산이 가능한 희석식 소주를 생산해 소주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현재 우리가 즐겨 마시는 소주의 시작점이 여기에 있다.

기사에 등장하는 평양의 오히라와 인천의 아사히(조일양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소주를 대량생산한 회사로 각각 1919년 봄과 가을에 소주를 출시했다. 조일양조는 해방 후에도 한동안 소주를 생산하다가 부도로 문을 닫았다. 공장 건물은 소주 생산이 중단된 뒤 여러 용도로 쓰이다 2012년 주차장 건설을 위해 철거됐다.

당시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조일양조장 철거 문제를 다뤘지만, 위원들 사이에 의견이 갈렸다. 필자에게 활용 방안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철거를 반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난하던 위원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근시안적 행정에 갇혀 사라진 조일양조장, 애경사, 신일철공소 철거는 몇 번을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이다. 근대기에 세워진 공장건물들이 전국 곳곳에서 리모델링을 거쳐 지역 발전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자산은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 공간환경, 기반시설로 현재와 미래에 지역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비지정문화재이다. 인천은 건축자산을 무분별하게 철거하는 도시인 동시에 보전 활용의 모범 사례를 만든 고장이기도 하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인천세관 창고의 이전 복원에는 당시 인천시 행정부시장의 역할이 있었고, 협궤열차 수인선 송도역사 보전은 연수구청장의 결단이 있어 가능했다. 인천시 건축자산 담당 부서의 적극적인 노력은 옹진군 제2장학관 부지 안에 위치한 후카미(深見) 단무지공장 사무실 겸 기숙사를 살렸다. 그러나 이 건물을 철거한다는 옹진군의 입장이 완전히 철회되지 않아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간 인천은 물론 전국에서 많은 건축자산이 이런저런 이유로 철거됐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건축자산을 보전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철거에 앞서 신중한 검토와 분석, 나아가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철거가 결정된 다음에는 근대건축 전문가의 면밀한 조사가 뒤따라야 한다. 

공공에 의한 건축자산 매입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철거 위기에 처한 건축자산을 공공이 매입해 지역재생 거점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그에 앞서 소유자 스스로 활용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건축자산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용역을 실시하는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 대부분의 용역보고서는 각종 도표와 그림으로 치장해 보기에는 그럴싸하지만 정책에 반영할 만한 내용은 적다. 용역 대상과 내용이 비슷해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성공적인 보존 활용 사례는 이미 차고 넘친다. 문제는 실천이다. 정책결정권자의 의지에 따라 건축자산의 운명이 결정되는 구조를 넘어 역사·문화적 관점에서 보전 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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