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징악이라는 선명한 구조를 바탕으로 시원시원한 액션과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한 오락 영화를 즐겨 보다가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찾게 되는 때가 있다. 지난주 막을 내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는 후자에 해당하는 예술영화를 응원하고 발굴하는 유서 깊은 영화제다. 칸 영화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미처 조망하지 못했던 삶의 다양한 모습을 비추는 작품에 주목하는데, 2018년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이 시대 청춘에 대한 논쟁적인 시사점을 던져줬다. 청춘의 초상을 담아낸 영화 ‘버닝’은 비록 아프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은 날을 그린 감성적인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건조하고, 답답하고, 모호하다. 특히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주는 무력감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는 청년의 감정에 주목하고 있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20대 후반의 청년 이종수는 택배일을 하며 살아간다. 종수는 어느 날 배달 간 가게에서 경품 응모를 하게 되고, 여성용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는다. 그리고 행사의 내레이터 모델인 해미가 초등학교 동창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근황을 묻던 두 사람은 호감을 느낀다. 해미는 곧 떠날 아프리카 여행의 부시맨 부족문화를 이야기하며 단순히 배고픈 사람은 ‘리틀 헝거’, 삶의 의미에 허기진 자는 ‘그레이트 헝거’라 말하며 본인이 여행 간 사이에 자취방에 홀로 남겨질 고양이를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 해미의 자취방에 온 종수는 남산타워 전망대에서 반사된 빛이 방 안에 떠도는 것을 보며 숨어서 보이지 않는 고양이에게 사료와 물을 챙겨 준다. 

 서울을 떠나 파주 고향집으로 향한 종수는 그곳에서도 송아지 여물을 챙겨 준다. 엄마는 오래전에 집을 떠났고, 누나는 결혼해서 출가했으며, 아버지는 최근 공무원을 폭행해 구속된 상태였다. 때문에 종수 외에는 송아지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간 흐른 뒤 해미에게서 인천공항에 마중 나와 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곳에서 종수는 뜻밖의 인물과 마주한다. 해미가 아프리카에서 만났다는 ‘벤’. 귀국 후 어머니와 다정하게 통화하고, 종수의 고물 트럭과 비교되는 럭셔리 스포츠카를 몰며 강남 부촌에서 생활하는 이 사람은 특별한 직업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유일한 이유로 보였다. 어울리지 않는 이들은 해미를 연결고리로 불편한 만남을 지속하던 중 해미의 실종과 마주하게 된다. 종수의 시점에서는 벤이 의심되는 상황. 그러나 종수를 제외한 누구도 해미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는데, 과연 해미는 어디로 갔을까?

 표면적인 줄거리 이면에 풍부한 이야기를 묻어 둔 영화 ‘버닝’은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하는 작품이다. 수많은 상징이 다층적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 던져져 근원이 불확실한 분노를 품고 살아가는 청춘은 답이 없는 세상과 마주한다. 어디엔가 있을 진실을 찾아 부단히 헤매는 종수의 여정을 통해 감독은 이 시대의 청춘이 느낄 상실의 시대를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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