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올 오뉴월은 가물이 심하다. 서울·경기지방은 비가 온다 해도 그저 땅을 적시다 마는 정도다. 찔끔 비치는 눈물 같다. 경기 3대 저수지의 하나인 용인 이동저수지는 얼마 전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평균 누적 강수량은 5.8㎜로서 고작 평년의 5.6% 수준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주말 농사꾼들이 농작물에 줄 물이 말라 자기 집 수돗물을 가져다줄까 싶다. 다음 주면 황도 90도, 양의 기운이 절정인 ‘하지’가 기다린다. 장마와 가뭄에 대비하는 시기라 하지만, 지금까지는 가뭄이 기승을 부린다. 가물을 맡은 신 한귀(旱鬼)가 노했는가. 

단지 농심만 타들어 가는 게 아니다. 신문에는 온통 인플레 천지다. 런치플레이션·애그플레이션·에코플레이션 같은 신조어가 난무한다. 심지어 50년 만의 최악 인플레라고 한다. 더구나 나라 살림의 거시 건전성지표인 우리의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지난 4월 기준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고 한국은행은 발표했다. 이 쌍둥이 적자 상태는 1997년 외환위기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 가장 타격을 입는 계층은 뭐니 뭐니 해도 서민들이다. 날씨 가물에 더해 주가 폭락에다 폭등한 생활물가까지 민초들의 가슴을 더 메마르게 한다. 이 같은 국민들의 아픔에도 아랑곳없이, 작금의 여야 정치집단은 볼썽사나운 자중지란 속에 빠져 있는 듯하다. 모리배집단으로 보일 뿐이다. 부조리투성이 세상이다.

우리는 지난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와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르면서 내홍을 겪었다. 화합하기보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느낌이었다. 대통령 당선과 지방선거에서 현 신여당 출신들이 과반 당선됐다고 해 요즘도 자기들이 잘해서 그리 된 양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국민 앞에 으스대는 얼굴들이 참으로 오만방자하다. 패하고도 제대로 반성도 할 줄 모르는 야당도 매한가지다. 

생활 일선에서 민생고를 해결코자 애써 살아가는 다수 서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정치인이나 언론·방송인들처럼 공개 석상에서 말할 기회가 없을 뿐, 입이 없어 말을 못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잘하거나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최악의 선택을 피해 이전 집권당보다 더 잘하라고 선택한 경우가 상당하다. 이것이 본질임을 왜 모를까. 싹수가 노랗게 보인다. 

이런 정당들이 쓴 수백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선거비용은 국고(정당보조금)로 충당된다고 한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낸 세금들이 모리배 기득권 정치집단의 붙박이 운영자금으로 기능하는 셈이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유권자의 약 반수가 투표하지 않았다. 특히 지역색이 강한 광주의 투표율(37.7%)과 대구의 투표율(43.2%)은 반수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다. 30%대 득표로 당선된 교육감도 있다. 도대체 기초의원, 광역의원이 누군지 제대로 알고 투표한 국민은 얼마쯤일까. 당초 제도 도입 때 내세운 ‘무보수 명예직, 풀뿌리 민주주의’는 허울 좋은 구호가 됐다. 국민의 세금으로 기생하는 정치모리배의 기초 양산소라 할까. 이즘은 가히 선거만능시대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부정선거설이 대두되는 현실은 암울하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더 거론할 바 없지만, 설(說) 자체만 인정해도 자기 처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냥 모른 체하며 살아갈 것인가(타협, 변절), 끝까지 파헤치고 척결에 나설 것인가(신조 이행). 황교안·민경욱·공병호 씨 같은 사회지도층 그룹이 아닌 일반인들이 자기 일을 하면서 후자의 방향에 서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봄 가뭄이 타들어 갈 때/ 건조한 산야를 적시는 비는/ 엄마의 젖맛보다 더 징하다∥가장 목마를 때/ 마시는 한 모금의 물은/ 벌통의 꿀맛보다 더 달다∥영혼이 메마를 때/ 내리는 축원의 기도 소리는/ 침사(鍼士)의 자침(刺鍼)보다 더 짜릿하다." 졸음 자유시 ‘녹우(綠雨)’ 전문이다. 오랜 가뭄 끝에 푸나무 잎사귀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녹우가 소나기로 좍좍 쏟아질 때 달콤한 비, 단비가 된다. 가물에 단비 오듯, 부조리한 우리 정치·선거·경제·사회 부문에도 해당 단비가 시원히 내리기를 고대한다. 시조로 해갈의 여름비를 꿈꾼다.

- 단비 세상 -

 허울 좋은 속내 곳곳
 거짓말이 도사리면
 
 지구촌 인류 맘에
 선진 한국 사라지니
 
 참말로
 참말이 넘쳐야
 단비 세상 나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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