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 회장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 회장

지난 5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간호법을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해서 법사위에 넘어갔다. 이에 항의해 5월 22일 의사와 간호조무사들이 대규모 집회를 했고, 간호조무사협회 회장으로서 의협 회장과 함께 삭발을 단행했다. 

현재 의협과 우리 협회뿐 아니라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임상병리사협회, 방사선사협회, 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응급구조사협회, 요양보호사중앙회, 장기요양기관단체 등 13개 단체가 연대해서 간호법 반대 활동을 하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보건의료단체들이 간호법을 반대하는지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무엇보다 쟁점과 논란이 많은 간호법을 보건복지위에서 민주당이  단독 처리함으로써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해당사자 간 의견이 대립하고 갈등이 심한 법일수록 충분한 의견 조율을 해야 하는 게 국회의 역할이다. 하지만 간호법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 퇴장한 가운데 민주당 의원들이 단독 처리했다. 국민의힘 간사인 강기윤 국회의원도 날치기 처리라고 항의한 바 있다. 

법안의 체계와 내용도 동의하기 어렵다.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면허와 자격의 관리 및 업무 규정은 간호법에 있는데, 업무 관련 금지사항과 법률 위반에 따른 벌칙·과태료 등 처분규정은 의료법에서 따로 정한 것은 법률적 체계성도 부족하다. 또한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을 ‘간호특성화고’와 ‘학원’으로 제한한 위헌적 요소가 그대로 있는데다, 간호법의 적용 범위가 지역사회로 확대됨으로써 장기요양기관 등에서 일하는 2만여 명의 간호조무사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법을 위반해서 업무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도 있다. 

간호법의 필요성에 관한 간호협회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간호사 관련 규정이 90개가 넘어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런 논리라면 간호사만 아니라 의사, 의료기사, 간호조무사 등 직종별로 법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 간호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처우 개선은 전체 보건의료인력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초고령시대 지역사회에서 간호의 역할이 중요해서 간호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간호사 역할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의사와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응급구조사, 간호조무사 등 다른 직역도 역할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비약된 논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법사위로 넘어간 간호법은 간호사만을 위한 법일 뿐이다. 이대로라면 간호조무사는 의료법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게 더 낫다. 간호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간호법 제정에 앞서 보건의료인력에 관한 바람직한 법률 체계와 초고령시대 지역사회 보건의료 체계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하며, 처우 개선도 간호사만 아니라 전체 보건의료인력의 처우 개선을 함께 제도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을 ‘간호특성화고’와 ‘간호학원’으로 제한한 위헌적 요소도 없애야 한다. 미용사나 조리사도 특성화고와 학원뿐 아니라 전문대에서 양성하고 있고 모두 자격시험을 볼 수 있지만, 간호조무사만 유일하게 시험 응시 자격을 특성화고와 학원으로 제한해 놓았다. 고등교육법에서는 전문대가 학칙에 따라 ‘간호조무과’를 만들 수 있는데, 문제는 간호법에서 전문대 간호조무과 졸업자에게 시험 응시 자격을 주지 않는 데 있다. 따라서 ‘특성화고’로 제한한 간호법 규정을 ‘특성화고 또는 이와 같은 수준 이상의 학력이 인정되는 교육기관’으로 고치면 된다. 

하반기 국회 원 구성이 되면 13개 단체 공동 명의로 국회 법사위에 간호법을 졸속 처리하지 말고 숙려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요청할 것이다. 그리고 13개 단체 상설 조직을 구성해서 지역사회 보건의료체계와 전체 보건의료인력 처우 개선 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 추진할 계획이다. 간호협회도 단독으로 간호법 제정에 매몰되기보다 간호법 제정 추진을 중단하고 전체 보건의료단체가 함께 연대해서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미래를 새롭게 만드는 데 참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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