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동
이강동

황해도는 심청전과 거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백령도가 배경이 되는 설화들이라고 한다. 설화들이 작성된 지역적 배경과 장소 등에 있어 문헌 내용과 다르게 전해지고 있다. 의문을 제기한다. 

 서해 용궁과 관련된 설화 중 고려 태조 왕건의 증조부 작제건도 있다. 작제건은 1100년 서해 바다에서 용왕의 부탁으로 중으로 변신해 불경을 외우며 용왕의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구름 속에 숨어 있는 늙은 여우 부부를 활로 쏘아 죽였다. 그러자 용왕은 즐거워하며 용궁으로 작제건을 초대해 용왕 딸과 혼인시켰다는 설화가 있다. 개성 큰우물(광명사 우물)이 용궁의 통로로 전해진다. 인천시 동구 만석동은 선인들이 마을 산 꼭대기에 자그마한 용의 사당을 건립해 봄과 가을에 제례 행사가 있었던 마을이다. 용의 사당은 황해도 예성강 부근 조개굴에도 있다고 한다. 

 1천130년 전 신라 사신 양패는 군사 50명과 같이 중국 당나라로 가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곡도(당시 지역에서는 골대도라 부름·전라도 해역에 골도라는 섬이 있음)에 머물게 된다. 양패는 꿈에 백두노인을 만나 활 잘 쏘는 한 사람만 남기고 가면 쉽게 당나라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양패는 일행 모두의 이름을 나무 조각에 적은 뒤 못에 던져 바닥에 가라앉는 사람이 남아 있기로 한다. 나무 조각들을 못에 던지자 하나가 가라앉는다. 거타지였다. 거타지를 남기고 일행은 떠난다. 

 거타지는 못으로 올라오는 서해 용왕을 만난다. 용왕은 해가 솟을 때 공중에서 중이 내려와 불경을 외우며 자식들을 죽이고 있으니 중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다음 날 못 숲속에 숨은 거타지는 중이 나타나자 활을 쐈고, 중은 늙은 여우로 변해 죽었다. 용왕은 즐거워하며 딸을 거타지와 혼인시키고, 거타지는 2마리 용의 호위를 받으며 일행들과 합류한다. 당나라 관인들은 신라 사신들이 용의 호위를 받으며 오자 놀라워하면서 연회를 베푼다. 일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온 거타지는 가슴에 품었던 꽃가지를 아내로 변신시켜 백년해로했다는 거타지 설화는 백령도가 아닌 곡도(골대도)의 설화 문헌자료다. 

 효제와 효우의 의의를 마음껏 실천했던 심청의 고향은 황해북도 황주다. 심청 어머니는 꿈에서 꽃 모자를 쓰고 손에는 월계화를 든 옥녀를 만난다. 그 후 임신이 되고 오색구름 속에서 선녀 같이 아름다운 딸을 낳는다. 심청이었다. 마을에서 중국 남경에서 왔다는 상인들을 만난다. 우리가 다니는 바닷길 가운데 인당수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1년에 한 번 소녀를 던져 바다 신의 심기를 풀어줘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던 심청은 상인들에게 본인을 던져 달라고 했다. 심청은 남경으로 가면서 인당수 지점으로 용감하게 뛰어든다. 바닷속 깊은 곳으로 다다르자 아름다운 용궁이 있었다. 효심에 감동한 용왕은 심청을 환생시켜 아버지에게 보내 눈을 뜨게 하고 행복한 생활을 했다는 내용이다. 

 인신공희는 중국 대륙 중원지대에서 활동하던 우리의 선인들 동이인 시대의 풍습이 대립 세력이었던 중국 황제 시대의 한족들에게 전파된 것이다. 동녀의 인신공희는 7월에 행한다는 문헌도 있다. 심청 어머니가 월계화 꽃을 본 것으로 보아 심청전이 작성된 시기를 고려시대까지 추정해 본다. 

 심청의 고향 황해북도 황주지역은 제령강·예성강·월당강(황주천)이 있어 남포와 대동강으로 선박들이 다니던 고대 중국 산동성과의 무역항로였다. 정확하게 서기전 108년부터 중국 상선들이 황주를 지나 대동강까지 올라갔다. 중국 남경에서 항로를 따라왔다면 그 바닷길 중간 지점에 인당수가 있어야 한다. 황주가 배경인 심청전 내용으로 보면 그렇다. 고려와 조선에서도 무역항로 이외는 외국 선박들이 정박할 수 없었다. 백령도 해역에 중국 황당선들이 자주 출몰하자 수군들이 중국으로 압송하는 일들이 있었던 곳이다. 백령도가 심청전의 배경이고 인당수가 황해도 해역에 있다는 것에 의문이 생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