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에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한 작품들에 ‘시대를 앞선 영화’라는 표현이 붙는다. 2004년 개봉한 영화 ‘시실리 2㎞’도 그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개봉 당시에도 적지 않은 관객들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영화 자체로는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 이 영화의 장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조폭이 주인공이지만 조폭영화는 아니고, 억울하게 죽은 처녀귀신이 비중 있게 등장하지만 공포영화도 아니다. 영화에서 귀신보다 무섭고 깡패보다 폭력적인 진짜 주인공은 바로 순진한 듯 평범해 보이는 시실리에 사는 마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선악이 공존한다. 평상시에 잠자고 있던 마음속의 악이 드러나는 순간은 언제이고, 그때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지는지 영화 ‘시실리 2㎞’는 웃음과 버무려 풍자적으로 꼬집는다. 

수백억 원대 다이아몬드 밀수 조직에서 배신자가 나타난다. 조폭의 중간보스 양이는 믿었던 친구 석태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는다. 다이아를 들고 달아나던 석태는 도주 중 인적이 드문 시골 마을 시실리에 접어들고, 차량 파손으로 발이 묶인 석태는 마을에서 하룻밤 묵기로 결정한다. 순박한 사람들의 환대에 마음을 놓은 석태는 화장실에서 훔친 다이아를 확인하던 중 미끄러지며 실신한다. 석태가 죽었다고 착각한 사람들은 우연히 발견한 한 개의 다이아몬드에 그 죽음을 은폐하기로 결정한다. 빈방에 가벽을 만들에 석태를 숨긴 사람들은 다이아를 팔아 팔자 고칠 생각에 모두 들떴다. 

이때 중간보스 양이가 석태를 찾아 시실리에 도착한다. 소규모의 무리를 끌고 온 양이는 마지막 통화 신호가 시실리로 잡혔다며 마을 사람들에게 석태의 행방을 묻는다. 못 봤다고 어색하게 부인하는 사람들을 의심한 양이는 마을에 묵으며 석태의 행방을 쫓는다. 마을 이장 변노인은 밤새도록 악귀를 쫓는 불경을 틀어 놓고, 잠자리가 불편한 탓인지 양이는 처녀귀신과 폐교에서 만나는 이상한 꿈을 꾼다. 그리고 다음 날, 석태를 찾는 과정에서 꿈에서 봤던 폐교를 마주한다. 그곳에서 처녀귀신 송이를 만난 양이는 귀신에게서 마을 사람들의 악행을 듣게 된다. 결국 모든 사달은 돈 때문이란 걸 알게 되는데, 석태가 가져간 다이아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돈 앞에서 이성을 잃고 잔인한 속내를 드러낸다.

‘시실리 2㎞’는 임창정 주연의 영화로 배우 특유의 입담과 현실적인 코믹 연기가 탁월하게 살아있는 작품이다. 그 뿐만 아니라 다시 없을 화려한 배우들이 막강한 라인업을 형성한다. 마을 이장에 변희봉 배우를 비롯해 폭력배 조직원으로 등장하는 권오중, 안내상, 박혁권, 우현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또한 마을 주민으로 등장하는 최원영, 김윤석, 박명신, 김유희와 귀신 역의 임은경 배우의 활약도 눈부시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곳곳에서 터지는 웃음은 억지스럽지 않고 재치 있다. 이와 함께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비극을 신랄하게 비판한 점 또한 이 영화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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