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계봉 시인
문계봉 시인

올 상반기에는 두 개의 큰 선거가 연이어 치러졌다. 촛불혁명 이후 권력을 잃었던 특정 정치세력이 두 건의 선거에서 모두 승리함으로써 현재 정치판은 극도의 혼란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근소한 차이로 당선된 새로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퇴임한 전임 대통령의 지지율보다 낮게 나오는 현실에서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마음이 불편하긴 마찬가지일 테다. 

하지만 곧이어 치러진 지방자치선거에서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압승을 거두자 한껏 고무된 새로운 정권의 담지자들은 장관을 비롯한 정부 요직 인사에서 검찰 출신을 전진 배치하고 함량 미달 인사를 서슴없이 천거하는 등 앞선 정권의 몰락 원인이던 인사의 난맥을 그대로 재현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반복되는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만 하는가.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00% 지지를 바탕으로 한 일방적인 승리는 있을 수 없다. 아니 있어서도 안 된다. 다양한 견해가 서로를 견제·비판하며 상생의 길을 도모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희한하게 선거만 치르고 나면 정치세력 간 사이가 철천지원수가 된다. 새로운 권력은 민생의 안정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비전을 고민하기보다 전임 권력의 흔적 지우기부터 시작한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다 나의 몸가짐에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옛말도 있고(善惡皆吾師),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중의 한 명은 반드시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이가 있다는 논어의 말(三人行必有我師)이 무색하게 저쪽은 악이고 우리만 선이라는 망집에 사로잡혀 협력과 협치보다는 적대적 관계 조성에 혈안이 되곤 한다. 한국 정치의 슬픈 초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정부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그러다 보니 정권이 바뀌면 소위 인수위라고 하는 한시적 기구의 인사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앞선 정부의 인사들을 구축(驅逐)하려 하고, 그들의 정책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일은 애초부터 난망하고 그로 인한 세금의 유실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물론 전임·후임을 막론하고 선심성 행정의 유산이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할 경우 그것을 바로잡아 올바른 정책 방향으로 고삐를 트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쁜 정책을 유지하는 것보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지출되는 비용이 훨씬 적다면 과감하게 정책 집행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 기투여된 재정이 아깝다고 밑 빠진 독에 계속해서 물 부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시민의 세금을 진지한 고민 없이 아무 사업에나 투여하는 건 일종의 공금 유용이고, 세금에 대한 절도행위다. 결국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이 짊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정권 교체기에는 정책의 일관성이나 잘못된 정책의 시정을 위해서 전임·후임 정치세력 간 대화가 심도 있게 이뤄져야 한다. 그것을 위해 새로운 시 정부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한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아량과 포용이라는 말로 윤색할 일은 아니다. 그들이 진정 시민을 위한다면 그건 선심이 아니고 의무이기 때문이다. 전임 시정부의 핵심들도 잃은 권력을 아쉬워하며 상대에 대한 반목과 질시로 시간을 보낼 게 아니라 새로운 시정부와 대화에 나서야만 한다. 그건 비굴한 게 아니다. 앞선 시기에 자신들을 지지해 준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자 예의일 뿐이다. 잘못한 것은 깨끗하게 인정하고, 정당한 것은 합리적 근거로 상대를 설득해 정책의 지속성을 확보하게 하는 것이 시민에게 보답하는 그들의 마지막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사정이 이런데도 새로 들어선 이들이 점령군 코스프레를 하고, 물러가는 이들은 ‘어디 잘 되나 보자’식의 원망만 일삼을 뿐 협치에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몽니나 부리는 세력으로 전락한다면 양자 모두 시민의 준엄한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권력은 흔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 꽃에 비유된다. 필 때가 있으면 질 때가 있는 법이다. 피는 꽃의 아름다움을 함께 기뻐하고 지는 꽃의 처연함을 함께 위로하는 상생의 정치 풍토는 진정으로 요원한 것인가? 

사실 이것의 해법은 간단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의 정신을 마음에 새기고, 정치행위란 군림하는 게 아니라 봉사하는 일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면 겸손한 정치, 상생의 정치는 가능해질 것이다. 이렇게 쉬운 일도 제대로 못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시민이 다시 회초리를 들고 나서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가끔은 매가 약일 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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