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얼마 전 무더위에 지친 국민들에게 낭보가 날아들었다. 순수음악과 기초학문에서의 세계적 쾌거, 18세 피아니스트 임윤찬 군의 최연소 우승과 39세 수학자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 소식이었다. 

 지난 6월 19일 북미 댈러스에서 ‘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결선이 열렸다. 그날 한국 청소년의 신들린 듯한 K-클래식 연주는 압권이었으며, 지금도 동영상 미디어에 실려 지구촌을 울리고 있다. 나도 눈시울을 붉혔다. 7월 5일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 메달’을 받은 젊은이가 있었다. 활짝 웃는 모습을 본 감격은 그대로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도무지 가까이 하기 힘든 ‘조합 대수기하학’이라는 고등수학으로 무려 그 분야의 난제 11가지를 풀었다니 놀랍도록 신선하다. 

 작금 BTS의 K-팝, K-무비, K-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중심의 한류가 세계를 휩쓰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서구 고전음악과 순수학문 분야에서의 부상은 한민족의 우수성을 지구촌에 새삼 알리는 계기가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 미래 주역들의 이런 희소식은 어지러운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둘 다 그 활약의 밑바닥에는 ‘시 정신’이 흠뻑 깔려 있는 것 같다. 한때 등단 시인을 꿈꾸며 고교를 자퇴하고 시 쓰는 삶을 살고자 했던 허 교수와 14세기 초 완성된 불후의 대서사시 단테의 「신곡」을 반복 독파해 외우다시피 했다는 임 군이다. 

 겉으로는 ‘시’, ‘기하학’, ‘연주’가 서로 무관한 듯하나, 안을 들여다보면 일면 상통함을 느낄 수 있다. ‘시’는 통상 단문 속에 그 제재의 본질을 압축해 표현한다. 평생 시작을 해 오면서 시의 논리적 정연성을 절감하고 있는 바, 대수기하학의 정교한 논증이나 피아노 연주의 초절기교성은 사상(事象)의 본령을 찾아가는 입장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또한 3가지 분야는 모두 무한한 상상력의 산물이랄 수 있다. 내가 시조나 자유시를 창작할 때 그 상상력의 범위는 한량없다. 작게는 전자·양자 같은 소립자 세계로부터 크게는 천문·우주 같은 거시 세계에 이르기까지 맘껏 오간다. 세상에는 이처럼 수학적 난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으며,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보다 더한 작곡이나 연주의 문도 곳곳에 열려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상상력의 도달점은 서로 다르다. 수학 같은 과학은 ‘진리’, 문학과 음악 같은 예술은 ‘미학’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반세기 전만 해도 먹고살기 힘든 산업화 시대였다. 그때는 당장 의식주 해결이 급해 대부분 순수예술이나 기초학문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문학, 음악, 수학이 서로 무관한 분야로 여겨졌지 싶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정신적 자양분을 낳아 주는 순수학문과 예술문화 분야가 자연스레 부각되는 시대라, 이 3가지의 경계가 무너져 뒤섞이는 느낌이다. ‘수학’만 해도 ‘과학이다, 인문학이다, 과학의 시다, 심지어 과학의 예술이다’라고들 회자된다. 또한 ‘과학’을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이라 해 그 의미를 넓혀 쓰기도 한다. 온통 시, 음악, 수학이 하나로 용해되는 느낌이다. 

 학문의 경계가 바스러져 모두가 조화롭게 교류하는 융합학문이 탄생되는 시대다. 이러다가 온 누리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이어진 것이라 강변할 판이다. 이른바 세포우주설이나 홀로그램 우주의 현상은 아닌지 상상해 본다. 

 이쯤에서 임 피아니스트와 허 수학자의 교육환경을 본다. 둘 다 비교적 좋은 가정환경과 국내 교육이 기초가 된 결과이다. 앞사람은 일찍부터, 뒷사람은 어릴 때 평범하다가 좀 늦게 각각 천재성을 발휘했다. 짐작건대 누구나 타고난 특장점이 있으며, 뒷바라지 교육 여건에 따라 천재성 발휘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본다. 지난날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간난 속에서 소질을 펴 보지도 못한 채 사장됐을까 생각하니 안타깝다. 

 한국은 앞으로 인류의 정신문화를 이끄는 세계 중심 국가가 된다는 예언들이 있다. 금년 상반기만 해도 세계 27개 클래식 콩쿠르에서 3위 이상 한국인 입상자가 37명이나 된다고 한다. 머잖아 대중·순수 분야를 망라한 한국문화(K-Culture)가 세상을 풍미할 조짐이다. 한 수 시조 올린다. 

- 영가무도(詠歌舞蹈) -

 읊으니 시가 되고
 부르노니 음악이다
 
 춤사위 결결마다
 오묘한 수학법칙
 
 가무혼
 흰옷자락에 실려
 세세 천지에 너울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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