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사망자는 가족이나 친척이 없거나 이들에 의해 인수가 거부된 시신 혹은 유골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시신은 전통적 관습과 사후세계관을 믿는 풍속과는 달리 1962년 이전까지는 ‘법적 폐기물’로 분류됐다.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헌법 제1021호로 시체해부보존법을 지정해 여러 번의 개정을 통해 1995년 제11519호 시체 해부·보존에 관한 법률로 재개정됐다.

이처럼 연고자가 없는 고인의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애도하고 이별하도록 지원해 사회적 책무 이행과 고인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수원 한독병원 장례식장에서 무연고자의 공영장례를 원불교 추모의식으로 거행했다.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수원 한독병원 장례식장에서 무연고자의 공영장례를 원불교 추모의식으로 거행했다.

# 무연고자의 존엄한 추모 의식

‘공영장례’란 지원 대상자(수원시에 거주 혹은 관내에서 사망한 자)가 사망하는 경우 장례를 원활하게 진행하도록 수원시가 지원하는 장례의식이다.

수원시는 지난해 2월 ‘수원시 공영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을 통해 민관 협업체계를 구축해 4대 종교단체(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 종교의식을 거행한다.

‘수원시 공영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는 ▶시장은 공영장례에 필요한 행·재정적 기반을 조성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시장은 공영장례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장례업체 또는 단체 등이 대행하도록 한다. 그 경우 예산 범위에서 대행 기관에 해당 장례비용을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공공기관인 지자체의 경우 사회적 책무를 다할 뿐더러 고인의 존엄성을 유지해 선진 장묘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한다.

이러한 시의 노력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종교단체와 무연고자의 공영장례식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성남·화성·광명·전남 창원·제주 등 타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을 할 정도다.

장례를 돕고 있는 천주교 연합회원들.
장례를 돕고 있는 천주교 연합회원들.

# 무연고자에 대한 미담사례

지난해 8월 수원시 인계동에 위치한 한독병원 장례식장에서 50대 무연고자 A씨에 대한 추모가 시 처음으로 진행됐다.

수원역 일대에 위치한 낡은 여관에서 숨진 채 발견된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시 관계자와 경찰 등은 A씨 가족에게 사망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유족은 시신 인수를 거부했고, 한독병원 장례식장에서 원불교 예식으로 장례를 진행했다. 당시 천도법문과 축원문 낭독, 분향 등의 순서로 진행된 첫 공영장례식에는 수원시 장묘문화팀 등이 참여해 고인의 마지막을 추모했다.

이어 택시업종에 종사하던 B씨가 극단적 선택을 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장기간 연락이 끊겼던 유족을 찾았지만, 그들은 시신 인수를 포기했다.

기독교총연합회원들이 고인을 추모했다.
기독교총연합회원들이 고인을 추모했다.

B씨의 직장 동료들은 시에서 공영장례가 거행된다는 사실을 알고 불교식으로 공영장례를 거행해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게 했다.

또 부모 없이 홀로 사회복지시설에서 자란 C씨는 26살 되던 해 지병으로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연고자가 없던 그에게 사회복지시설에서 같이 생활했던 지인들이 그의 빈소를 찾아 영정사진을 마련하고 추모하는 시간까지 가졌다.

이처럼 고인의 종교가 확인되면 해당 종교에서 추모의식을 주관하지만, 종교를 알지 못하는 무연고자의 경우 분기별로 담당 종교가 추모의식을 번갈아 진행한다.

분기별 담당 종교는 ▶1분기-개신교 ▶2분기-천주교 ▶3분기-원불교 ▶4분기-불교 순이다. 안치료와 수의, 관 등 시신 처리에 사용되는 비용과 빈소 사용료, 제사상 차림비, 영정사진 등 장례의식에 필요한 비용도 지원한다.

# 4대 종교단체의 다양한 장례의식

수원시의 공영장례식에는 다양한 종교가 참여해 무연고자의 장례를 책임진다. 

시는 지난해 7월 관내 4대 종교단체(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현재까지 본격적으로 관내 무연고자들의 장례식을 진행 중이다.

‘수원시 불교연합회’, ‘수원시기독교총연합회’, ‘천주교 수원교구’, ‘원불교 경인교구’가 시와 협업해 무연고자의 마지막 길을 책임지고 추모한다.

불교식으로 진행하는 추모의식.
불교식으로 진행하는 추모의식.

원불교는 무연고자 추모의식을 치른 사람들의 위패를 모아 공영장례 후에도 제를 올려 준다. 불교는 스님이 추모의식을 마친 뒤 직접 준비해 온 법문 등을 적은 종이를 화장할 때 같이 고인의 관에 넣어 태운다. 천주교는 기존에 조직돼 활동하던 연합회원들이 10명 내외로 공영장례식에 참여해 준비해 온 성수를 뿌리는 등 정성스럽게 추모의식을 거행한다. 기독교는 목사들과 회원들이 직접 고인의 이름이 적힌 순서지를 만들어 기도 낭독과 찬송가 등을 부르며 공영장례식을 치른다.

지난해 8월 첫 장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21명의 무연고자(기초생활수급자 19명, 일반 2명)가 종교의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추모의식의 경우 총 21회(불교 9번, 원불교 8번, 기독교 2번, 천주교 2번) 진행됐으며 수원 한독병원, 중앙병원 장례식장, 동수원병원 장례식장,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등에서 공영장례가 거행됐다.

# 수원 한독병원 김종덕 사무장

"홀로 외롭게 살아왔던 무연고자들의 마지막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내드리고 있어요."

22년이 넘도록 장례업계에 몸을 담은 수원 한독병원 김종덕(63)사무장은 관내에서 외롭게 살다 삶을 마감하는 무연고자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배웅한다.

그는 "본래 가족이 없이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 처리 업무를 수십 년간 해 왔다"며 "해 오던 일이라 지난해 처음 수원시에서 문의가 왔을 때 흔쾌히 수락했다"고 했다.

김 사무장은 "지난해 무연고자를 관할 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확인한 뒤 가족의 품으로 인도해 준 경험이 있다"며 "자녀들이 무연고자의 제삿날이면 연락이 와 항상 고마움을 전하기도 한다"고 했다.

김 사무장은 무연고자에 대한 공영장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무연고자를 만들지 않는 풍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고가 없는 홀몸노인들이나 가족이 포기한 사람들이 무연고자가 되는 실정"이라며 "가능하면 시신이 가족 품으로 돌아가 화장되게끔 최대한 노력하는 일이 제 임무이자 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장은 시의 공영장례로 무연고자들의 마지막을 추모하기도 하지만, 고인의 마지막만큼은 가족들의 품에 돌아가도록 유족들에게 직접 전화를 하거나 만나 돌려보내기도 한다.

김 사무장은 "홀로 외롭게 생을 마감하는 무연고자들을 위해 공영장례를 도입한 수원시에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무연고자들의 마지막이 외롭지 않도록, 또 가족의 품에서 세상을 떠나도록 늘 그들과 동행하겠다"고 했다.  

김강우 기자 kkw@kihoilbo.co.kr

사진= <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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