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길에서 마주치는 외국인은 파란 눈에 큰 키의 미국 또는 유럽에서 온 여행자나 주한미군이 대다수였다.

그나마도 자주 접하는 편이 아니어서 가끔 보는 외국인은 주변의 시선을 모았다. 지금은 거리를 스치는 외국인을 자주 본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서양인 위주에서 동남아시아나 중국에서 온 노동자가 대폭 늘었고, 이들의 가족이 국내에 자리잡으면서 아동과 청소년층까지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이주 외국인이 늘어난 배경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고성장을 이룬 후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인 이른바 3D업종에 비교적 임금이 저렴한 외국인 근로자를 투입하면서다. 또 결혼이민이 급증하면서 다문화가족이 빠르게 형성됐다.

다문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세금을 축내는 존재로 인식한다.

우리의 이 같은 인식이 과연 맞는지, 이들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인지 한번쯤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킨메이타 수원이주민센터 상임대표.
킨메이타 수원이주민센터 상임대표.

# 킨메이타 수원이주민센터 상임대표

이주 외국인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곳, 수원에 살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주 외국인을 위한 활동을 펼치는 킨메이타 수원이주민센터 상임대표를 만났다. 그녀는 1994년 한국에 왔다가 남편을 만나 29년째 사는 미얀마 출신 결혼이민자다.

미얀마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한국으로 유학 와 이화여대 한국어학당을 다니며 영어 과외를 하다 제자로 만난 지금의 남편과 ‘눈이 맞아’ 1998년 결혼했다. 미얀마에서도 봉사와 사회활동을 하던 적극적인 성격은 한국이라고 달라질 일이 없다. 타국에 시집 와 외롭게 살던 그녀는 결혼생활 10년째 되던 2008년 남편과 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이주민센터’라는 간판을 보고 무작정 그곳을 찾아 이주 외국인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자신이 잘하는 영어 봉사활동을 시작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지금은 이곳의 상임대표가 돼 이주민 인권 증진, 통·번역, 각종 교육활동을 펼친다.

# 이주 여성이 겪는 고충

킨메이타 씨가 결혼해 한국 생활을 시작한 때는 지금처럼 이주 외국인이 많지 않던 시절이다. 당시에도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은근한 하대와 차별을 받았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아이 문제였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는 내성적이고 생김새가 다르다 보니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차를 타고 가는데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를 옆 차에 탄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쳐다보며 수군거리던 장면은 지금도 소름 끼칠 정도로 나쁜 기억으로 남았어요."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스트레스를 받고 외모에 점차 자신이 없어지자 유치원에서 혼자 놀고, 소풍을 갈 때면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쓰며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학교에 엄마가 따라오는 상황을 싫어하고, 운동회 날은 오지 말라며 문자까지 보냈다.

이 같은 유형의 자녀는 엄마를 창피해하고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는 상황에 직면한 이주 여성들의 전형이다. 더구나 그녀는 생김새만 다르지 한국인이고, 영어에 능통하고 교사 생활도 했던 고급 인력이지만 결혼이주여성 대다수가 흔히 겪는 직간접적인 편견과 차별을 받아야 했다.

이주 외국인들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는 킨메이타 대표(왼쪽 첫 번째).
이주 외국인들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는 킨메이타 대표(왼쪽 첫 번째).

# 복지·의료·사회서비스 사각지대에 놓인 이방인들

킨메이타 대표처럼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 국적으로 살아가는 이주민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단기 체류로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나 그들의 자녀는 복지, 의료, 사회서비스 사각지대에 놓였다.

그녀는 이주민 가정의 국내 생활 어려움 중 사람들에게 받는 차별도 있지만, 사회구조적인 차별도 심각하다며 흔히 접하기 쉬운 사례 두 가지를 소개했다.

<사례1> A씨는 영주권을 가진 중국동포 여성이다. 중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일하며 지내다 아기를 출산했는데 육아 문제로 고민이 많다. 

인근 어린이집에 입소 문의를 해 보니 외국인의 경우 보육료 지원 대상이 아니기에 보육료를 전액 자부담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A씨는 자신과 남편이 직장을 다니면서 세금을 다 내는데 보육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둘 도리가 없어 월 40만 원이 넘는 보육료를 내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사례2> 17살인 B군은 며칠 전부터 종아리 부위에 알레르기로 보이는 염증으로 간지러움과 고름, 진물이 눌어붙는 증상이 계속됐다. 한국 아동들이라면 바로 부모와 병원에 갔을 텐데, B군은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진료비 걱정으로 병원은 꿈도 꾸지 못했다.

1년 전 한국인과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데, 집에 양부도 있고 갓난아기 동생도 있어 아프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혼자 한참을 괴로워하다 결국은 다른 친구의 신분증을 빌려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심각한 병은 아니라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니 치료는 잘 됐으나 혹시나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위 사례들처럼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안정적인 체류 자격을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보육이나 의료, 복지서비스 지원 대상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킨메이타 대표는 법과 제도가 잘 갖춰진 한국이지만 외국인이라고 해서 제외된다거나 ‘국민’으로 한정된 사회서비스가 제공되는 점을 지적했다. 

함께 음식을 만드는 이주 여성들.
함께 음식을 만드는 이주 여성들.

# 이주 외국인을 향한 편견

이주 외국인은 유형별로 결혼이민자, 결혼이민자의 자녀, 해외 출생 전혼자녀(중도입국 자녀), 외국인 근로자, 외국국적 동포, 유학생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외국인 주민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끼는 어려움보다는 이들에 대한 적대감과 필요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킨메이타 대표는 내국인들의 이주 외국인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3가지가 있다며 소개했다.

첫 번째,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편견이다. 외국인들이 근로자로 일하는 직종들은 정해졌고, 한국인을 우선 고용한 뒤 고용이 불가하거나 부득이 어려운 상황이 된 업체들만 외국인을 채용한다.

이제는 외국인이 없으면 농사도 못 짓고, 이들이 없으면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종에서 질서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마저 나오는 현실이다.

두 번째,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오해다. 외국인 주민들도 근로자로 일하면서 소득원천세와 주민세를 동일하게 납부하고 사회보험도 가입한다. 또 마트나 상점에서 물건 구입 시 부가세 등 세금을 납부한다. 그 외에 자동차세, 면허세, 교육세 등 거주하면서 기본 세금을 낸다. 오히려 납부한 세금 액수보다 그에 상응하는 공공서비스 혜택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더 많다.

마지막으로 ‘범죄율이 높다’는 그릇된 인식이다. 외국인들은 타국에서 살면서 되도록 법을 준수하려는 경향이 짙다. 불법을 저지르면 강제출국을 당하거나 거주하는 데 매우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또 싸움을 일으킬 때도 자국민들 간 폭행과 다툼이 훨씬 많으며, 다른 나라 사람을 상대로 폭력을 가하는 일은 흔치 않다.

통계상으로도 내국인의 범죄율이 외국인의 2배 이상이라고 보고된 사실을 보면 우리의 생각은 편견임이 입증된다.

# 우리의 필요에 의해 형성된 다문화사회

이주 외국인이 어떤 과정에 의해 이렇게 많이 유입된 걸까? 이 물음은 이들이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주는 고마운 존재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주민으로 권리를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외국인 근로자는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3D업종 위주로 근무하며 산업과 농촌의 부족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다.

결혼이민자는 1990년대 말부터 농촌이나 결혼 정년이 지난 한국 남성이 결혼이민자를 소개받아 혼인하면서 다문화가족이 급속도로 늘었다. 각급 대학에서 해외 유학생 유치로 한국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유입된 사례도 많다.

결혼 이주여성 가정에서 설 명절 세배를 했다.
결혼 이주여성 가정에서 설 명절 세배를 했다.

결국 우리의 필요에 의해 이주 외국인이 늘어난 셈이다. 

우리는 이들이 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정착하거나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주민 유입으로 얻은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화합과 동행으로 보답하는 제도와 인식 개선이 요구된다.

이주 노동자들이 국내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우리 사회는 단일 민족에서 다문화·다민족사회로 변화를 거듭했다. 

더욱이 이들의 양적인 증가와 더불어 장기 체류, 결혼, 자녀 출산과 중도입국 등으로 국내에 정착하게 되면서 제2의 고향으로 좋은 기억을 심어 주는 일도 국익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단순히 노동력 사용의 대상을 넘어 함께 살아가야 할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시점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외국인들은 차별적 구조에 노출됐다. 인권이나 의료서비스, 자녀 양육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외국인을 노동력 제공자, 이방인으로만 보지 말고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주민, 한 구성원으로 바라보며 지속적인 거주가 가능한 좋은 정주환경을 제공해 그들을 ‘우리와 함께 갈 이웃’으로 따뜻하게 맞아줄 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길 기대한다.  

군포=임영근 기자 iyk@kihoilbo.co.kr

사진=<킨메이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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