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하순을 지나 계절의 시계는 더욱 뜨거운 한여름을 향해 나아간다. 여름용 영화라면 시원한 바다가 펼쳐지거나 속이 뻥 뚫리는 호쾌한 액션 블록버스터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금발이 너무해’는 온통 핑크색으로 채워진 작품이다. 시각적으로는 여름용 영화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유쾌하고 즐겁게 볼 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2001년 개봉한 이 영화는 배우 리즈 위더스푼의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으로 가득 찼다.

대학 학부에서 패션을 전공한 우등생 엘 우즈는 학내 최고의 퀸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무탈하게 성장한 그녀는 성격도 좋아 친구도 많았다. 그 뿐인가, 미인대회 출신으로 외모도 특출 났다. 특히 윤기가 도는 탐스러운 금발머리는 엘의 미모에 빛을 더했다. 

그런 그녀가 최근 남자친구의 이상한 기류를 눈치챈다. 예전과 달리 살짝 긴장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프러포즈를 할 것 같아 엘은 마음을 가다듬고 기쁘게 청혼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리고 운명의 날. 워너는 특별한 저녁을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서른 전에 정계 진출을 꿈꾸는 남자친구는 그에 걸맞은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려야 한다고 서두를 떼며, 엘에게는 급이 맞지 않는다며 이별을 통보한다. 이 모든 상황이 황당하기만 한 엘은 잠시 비탄에 빠지지만 연인을 돌아오게 할 방법으로 워너가 진학한 하버드 로스쿨의 문을 두드리기로 결심한다. 

독한 마음을 먹고 공부한 끝에 합격통지서를 받은 엘은 워너와의 재회를 꿈꿨지만 워너는 이미 다른 여성과 약혼한 후였고, 어렵게 들어간 법대에서는 외모로 인한 갖가지 편견과 차별을 경험한다. 엘은 소위 말하는 ‘하버드의 공부벌레 스타일’이 아니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핑크색 의상, 굽이 높은 구두, 치렁치렁한 긴 금발머리와 화사한 메이크업은 전형적인 금발 백치미인과 닿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모로 그녀를 판단하고 평가했지만 엘은 그 기세에 눌리지 않았다. 자신의 취향을 고수하면서도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잘못됐음을 보여 주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엘은 냉대와 편견을 불식시키고 훌륭한 변호사로 성장해 간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당당하게 승리한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진한 감동을 준다. 결론적으로 봤을 때 영화 ‘금발이 너무해’도 편견을 깬 인간 승리의 기록을 담았지만 그 과정은 진중한 투쟁기와는 거리가 멀다. 무거움보다는 가벼움으로, 눈물보다는 웃음을 전면에 앞세워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오랜 시간 고정관념으로 굳은 편견이라는 벽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관객에게 일깨워 준다. 진중한 주제의식을 코미디 장르에 실은 관계로 다소 단순화된 영화 구조와 캐릭터 구축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 모든 부족함을 상쇄할 만큼 주인공을 소화한 리즈 위더스푼의 매력이 무한대로 발산된 작품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당당하고 솔직한 엘의 모습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할 만큼 기분 좋은 유쾌함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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