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호 부천지원 민사·가사조정위원
조수호 부천지원 민사·가사조정위원

드라코니언(draconian)이라는 말은 매우 엄격하고 가혹하다는 뜻으로, 아테네의 집정관 드라콘이 엄격하고 가혹한 드라콘법을 제정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유럽 문명의 모태가 된 그리스는 1천 개 이상의 도시국가로, 이들 가운데 유력한 도시국가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였다.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지만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고 드라콘법 시행도 그 중 하나다. 

아테네는 국토가 척박해 대부분 평민이 가난하게 살았고, 그나마 비옥한 농지는 귀족들이 차지했다. 평민들은 해마다 부족한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귀족에게 곡식을 빌리고, 흉년이 드는 해에는 빌린 곡식을 갚을 수 없어 갈수록 삶이 힘들어졌다. 빌린 곡식을 갚지 못한 평민은 귀족들의 자의에 따라 처벌받고 노예로 전락하기도 했다. 

드라콘법은 귀족들의 자의적인 법 집행을 방지해 귀족과 평민 간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BC 621년에 제정된 그리스 최초의 성문법이다. 이 법의 특징은 거의 모든 범죄를 사형에 처했는데 사람을 죽인 자, 남의 물건을 훔친 자, 심지어 게으른 자도 사형에 처했다. 그러나 엄격한 법 집행은 더 흉악한 범죄를 야기했고, 평민과 시민을 보호하려는 법이 오히려 귀족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법이 돼 계층 간 갈등을 심화시켰다. 결국 드라콘법은 지켜지지도 않았고, 법의 제정 목적도 달성할 수 없었다. 

전 정부는 임차인 보호를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과 부동산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소위 임대차 3법을 만들었다. 국민을 인위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나눠 임대인을 강력하게 규제했다. 임대차 3법은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에 관한 규정인데, 2020년 7월 31일부터 시행 중이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계약갱신청구권은 임차인의 일방적 의사표시로 임대차기간을 기존의 2년에 추가로 2년을 더 연장할 수 있는 권리이다.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이를 행사하면 임대인은 2기의 차임 연체나 재건축을 할 경우, 임대인이 거주하려고 할 경우 등이 아니면 거절하지 못하게 돼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임차인이 명시적으로 1회 행사할 수 있으므로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묵시적 갱신으로 거주하는 때도 행사 가능해 임대인이 주의하지 않으면 임차인이 6년을 거주할 수도 있다. 

②전월세상한제는 계약 갱신 시 임대료의 상승 폭을 종전 임대료의 5% 이내로 규제한 것이다. 이는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때 임대인의 횡포를 막기 위한 조치로, 만일 5%를 초과해 계약 갱신한 경우는 계약갱신청구권에 의한 계약 연장으로 보지 않으므로 임차인은 갱신한 임대차계약이 종료되기 이전에 계약갱신청구권을 또 행사할 수 있게 된다. 

③전월세신고제는 임대차계약을 맺고 난 후 30일 이내 계약사항을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규정이다.

임대차 3법은 시장경제원리나 수요공급원칙을 무시하고 임차인만을 보호하려는 법 규정으로 법의 합목적성이나 보편타당성이 모자라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입법 목적과는 달리 전월세상한제를 의식한 임대인이 미리 전세가를 증액해 계약하거나 월세의 비중이 늘어나고, 전세가가 높아지면 매매가가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해 오히려 임차인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결국 임대차 3법은 임대인에게나 임차인에게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규정이 됐고, 특정 계급을 보호하기 위한 과도한 입법은 역사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했다.

현 정부는 임대차 3법을 폐지하거나 전면 개정하려고 한다. 드라콘 이후 집정관이 된 솔론이 귀족과 평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온건한 개혁으로 아테네 민주주의 기틀을 마련하고 후대에 현인이라는 칭송을 듣고 있듯이 현 정부가 훌륭한 개혁 입법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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