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유나 양 일가족의 비극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사 사건이 연속 발생했다. 지난 25일 의정부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40대 부부와 6세 아들 등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소견에 따르면 일산화탄소 중독이 사망 원인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선 ‘빚이 많아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도 발견됐다고 한다. 여러 정황상 과다 채무로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추정된다. 전날에는 세종시의 한 아파트에서 자매 2명과 초등학생 자녀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사건에 참담함을 금치 못하는 건 단순히 자신만 극단적 선택을 한 게 아니라 직계비속에 대한 살인까지 자행했다는 점이다. 자식에 대한 비속살해와 부모에 대한 존속살해는 공히 인간임을 포기한 반인륜적인 범죄다. 그 중에서도 비속살해는 법리적으로 훨씬 더 죄질이 안 좋다. 부모는 법적 친권자이자 법정대리인으로 마지막까지 자식을 보호해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 그런데 단순히 자신의 처지가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항거조차 할 수 없는 최약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이런 사회 병리는 가중처벌 같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범죄자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이므로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없다. 부모들의 의식 표준이 바뀌어야 한다. 자식은 결코 소유물이 아니다. 내가 이 세상에 데려왔기 때문에 그 생명도 내가 거둘 수 있다는 잘못된 통념부터 바꿔야 한다. 자녀는 그 자체로 독립된 인격체다. 당연히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물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이런 불가침의 기본 인권이 보장되도록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사회안전망 구축이다. 보도에 따르면 일가족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대부분의 경우가 경제난이다. 채무 압박에 시달리고, 미래에도 이를 변제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자포자기·자기고립에 빠져들며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어려움이 오랫동안 방치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설혹 그런 어려움이 장기간 지속돼도 자식까지 대물림되지 않는 법제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 이런 제도와 관행들이 정착될 때 비속살해의 참극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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