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교수
신진식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교수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많은 관심을 받으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드라마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증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그린다. 바로 이 드라마 덕분에 사람들이 근래 들어 갑작스레 자폐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그리고 드라마의 내용과 별개로 자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알고리즘’을 통해 표면으로 떠오르며 이와 관련된 여러 사회적 이슈가 생겨났다. 

 이 드라마에서 이따금 언급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ASD)’는 우리가 아는 자폐증의 공식 명칭이다. 덕분에 필자도 이 용어를 이제야 정확하게 알게 됐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애, 언어성 및 비언어성 의사소통의 장애 그리고 반복적인 행동 및 제한된 관심을 특징으로 하며, 대부분 지적·발달장애를 동반한다. 그러니까 자폐증만 가진 경우는 드물고, 흔히 제2의 장애가 반드시 동반되기 때문에 장애 판정을 받는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스펙트럼’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나타나는 증상들의 스펙트럼이 매우 광범위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같은 자폐증을 지닌 사람들이라도 모습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자폐인은 1천 명 중 무려 1명꼴이고, 남자가 여자보다 4배 정도 많다고 한다. 이러니 이제라도 관심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자폐는 흔히 ‘사회성’과 관련된 좀 더 다양한 유형의 장애다. 가령 약한 자폐증을 지닌 사람은 집단에서 ‘눈치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되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와 가족들은 스스로 자폐라는 자각을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에서 흔히 ‘자폐’를 쉽게 ‘지적장애’와 연결시키지만 자폐는 지능이 높은 이들도 있고 학업성적이 우수한 사람도 있다. 드라마에서처럼 실제로 ‘변호사’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마이애미대학 로스쿨을 졸업하고 줌파노 페트리시어스라는 로펌의 변호사가 된 헤일리 모스라는 여성이 그 예다. 그녀는 우영우와 같이 자폐 스펙트럼 가운데 천재성을 보이는 서번트 증후군을 지녔다.

 전통적으로 자폐는 병이자 장애로 정의됐다. 이는 자폐인이 ‘비정상’이며 ‘아프다’라는 개념을 전제로 한다. 이에 따르면 당연히 자폐 특유의 증상은 치료 및 교정 대상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고전적인 치료 옹호 관점을 반대하는 무리는 ‘신경 다양성(Neurodiversity)’ 개념을 지지한다. ‘신경 다양성’은 바로 자폐권리운동의 근거 이론이자 신념이다. 이들은 비정상이 아닌 개성,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이야기한다. 자폐증을 비롯해 뇌신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발달장애들을 신경학적 ‘다름’의 현상으로 인식해 왔다. 이에 따라 장애-비장애 또는 비정상-정상이 아닌 ‘신경 다양인’과 ‘신경 전형인’으로 구분한다. 

 신경 다양인은 사회적 소수이기에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나, 분명 신경 전형인과 다른 재능의 소유자들이며, 이들 역시 사회에 기여하고 의미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천재성과 자폐 성향의 뇌 운용 시스템이 동질선상에 있음을 지적하며 신경학적 진화의 결과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사실 뉴턴, 아인슈타인, 비트겐슈타인, 오웰, 베토벤, 모차르트, 안데르센, 칸트 등이 자폐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신경 다양성 개념을 지지하는 인권운동가 및 단체들은 당사자에게 사회에 맞추도록 강요나 억압할 게 아니라 사회가 이들을 이해하고 일원으로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또한 사회가 신경 다양인이 편안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면 돌발행동이나 패닉 등 문제를 예방할 수 있기에 배려나 지원이 필요할 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반향어나 상동 행동 등 증상을 교정하려는 것은 차별이라고 본다.

 빛의 속도로 정보가 교환되고, 수천 년의 지식들이 태블릿 컴퓨터 한 대 안에서 정리되고 저장돼 볼 수 있는 세상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이제야 겨우 자폐증이 ‘스펙트럼’이란 이름으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서 주변이 조금의 도움만 준다면 이들은 누구보다 평범하다는 것을 알려 줬으면 한다. 나와는 조금 다른 이들에게 갖는 막연한 이질감과 불편함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이런 이야기를 통한 친숙함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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