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교사: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큰 후회를 합니다.

학부모:알아요. 하지만 아이가 저렇게 원하는데 어떡해요? 

교사:그래도 숙려제를 통해 계속해서 상담을 하고 이해를 시켜야지요.

학부모:아니에요. 아이가 원하는 대로 기를 살려주겠어요.

교사:나중에 흔들릴 때 왜 잡아주지 않았느냐고 아이가 원망해도 괜찮겠어요?

학부모:할 수 없죠. 지금 아이에게 시달리는 것을 참을 수 없거든요(…). 

이는 올해 초 숙려제도 없이 바로 자퇴를 하겠다는 고1 학부모와 담임교사가 나눈 대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학년 초부터 신입생의 자퇴가 빈번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중학교에서 많은 시간 원격수업을 받으면서 자유롭게(?) 행동하던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규칙적인 학교생활, 고교학점제에 따른 교과 선택의 책임, 내신 관리의 어려움 등등에 부담을 느껴 검정고시로 선회하며 막무가내로 "들어주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다"는 협박에 학부모가 항복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처럼 예년을 크게 상회하는 자퇴생(일명 학교 밖 청소년)이 배출되고 있다.

우리는 엄격하고 강한 교육을 ‘스파르타식 교육’이라 부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런 방식의 교육에 대해선 거의 무조건적인 저항을 하면서 탈권위적인 교육과 자녀의 기를 살려준다는 명분으로 부모의 역할과 의무를 지나치게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아이들이 식당이나 공원,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최소한의 공중예절이나 도리를 망각한 채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는데도 아이의 기(氣)를 살려준다고 방치하는 것을 보라.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는 부모의 직무유기요, 아이의 장래를 망치는 행위다. 

우리의 전통적 가정교육을 돌아보자. 한석봉의 어머니와 율곡 이이의 어머니의 엄격한 가정교육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그 자녀들은 학자로서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덕망 있는 성인으로서 훌륭한 인재로 자랐다. 현대에 와서는 세계은행 총재와 아이비리그인 다트머스대학교의 총장이었던 김용의 어머니, 두 아들을 오바마 행정부의 차관보로 키운 전혜성 박사 등은 세계를 향한 질문을 하도록 강조하며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엄격하고도 자상하게 키운 가정교육의 대표적인 경우다. 중국계 미국인 교수 ‘타이거 맘’도 일부 비난은 있었지만 널리 알려진 엄격한 가정교육의 경우다. 

도시국가인 스타르타에서는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이나 각 가정의 개별적 자녀가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공동의 인재로 인식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을 귀하다고 예뻐하기보다는 엄하게 키웠으며, 대신 다른 집 아이를 자기 자녀처럼 우대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어긋나지 않도록 키우는 데 초점을 뒀고, 혼자 잘났다고 생각하도록 키우기보다는 연대 의식을 강조했으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를 위해 자녀가 잘못했을 때는 엄하게 훈육하거나 매를 드는 것을 서슴지 않았고, 다른 집 아이가 잘못했을 때도 자기 자식을 대하듯 꾸짖던 교육 방식이었다. 

과거의 교육 방식을 그대로 현대에 적용하기는 무리다. 하지만 예절과 질서의 기본을 등한시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방식으로 살아가게 하는 가정교육은 근본부터 잘못됐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은 무엇을 말하는가. 또한 "파리의 개는 짖지 않고 어린이들은 울지 않는다"처럼 자유를 사랑하는 프랑스 부모들의 엄격한 자녀 교육과 2살 정도의 자녀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어른에게 말하듯이 엄격하게 생활의 기본을 교육하는 독일의 자녀 교육도 있다. 단지 아이의 기를 살리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며 참교육은 더더욱 아니다. 특히 어릴수록 삶의 기본 규칙과 예의, 질서를 강력하게 가르치는 것은 아동학대가 아닌 진정한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슬기로운 자녀교육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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