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경기본사 사회부장
안경환 경기본사 사회부장

"전 바다라고 불리는 엄청난 뭔가를 찾고 있어요." 어린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바다? 그건 지금 네가 있는 곳이야."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다. 

그러자 어린 물고기는 "여기는 물이에요. 내가 원하는 바는 바다라고요!"라며 억지를 부렸다.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뮤지션의 꿈을 이루고 허무감에 빠진 주인공 조에게 유명 뮤지션이 던진 말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의 얘기로, 이런저런 내용을 배워 사람으로 태어난 이후 살아갈 의지 같은 뭔가를 장착하는 과정을 그렸다. 뮤지션이 목표이자 유일한 삶의 의미였던 조는 목표를 이룬 순간, 기쁨보다 더 큰 공허함에 빠졌다. 

그의 얼굴은 이 순간이 그토록 바라던 삶의 의미가 맞는지, 오롯이 이 순간만을 위해 인생을 달려왔는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가득했다. 순간 화면이 바뀌고 파란 하늘과 쏟아지는 햇살, 떨어지는 나뭇잎, 스치는 바람 등 일상에서 소소하게 느낄 만한 장면들이 펼쳐진다. 조의 표정도 바뀐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쫓다가 잊힌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다.

영화 속 조처럼 우리네 삶도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빼앗긴 상태다. 주범은 코로나19다. 2020년 2월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감소 추세를 보이더니 최근 일평균 신규 확진자 10만 명대를 기록하며 재유행세로 돌아섰다. 2년 6개월여의 시간, 곳곳에선 불평이 쏟아졌다. 거리 두기를 해제하라, 보상을 더하라, 못살겠다, 정부가 책임져라 등 아우성이 끊이지 않았다. 소소한 일상을 되찾자는 아우성이기도 하다.

화제를 돌려보자. 아이 둘을 둔 부부다. 결혼 때까지만 해도 언제 어디서든 빛을 발할 자신감도 있었다. 얼마 후 첫 아이가 태어났고, 부부의 일상은 더 이상 이전의 일상이 아니었다. 아이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희귀난치성질환이다. 유전자 변이가 원인인데, 변이된 이유를 모른다. 유전도 아니다. 듣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아이는 시력마저 약하다. 말을 못하니 어느 정도 보이는지 알 길이 없다. 성장 장애도 있다. 이때부터 부부는 사실상 평범한 일상이 사라졌다. 직장뿐 아니라 대부분의 일상에서 ‘을’로 전락했다. 아이는 목숨을 담보로 한 힘든 수술을 여러 차례 거쳤다. 부부는 연차와 휴가, 휴직 등을 수시로 썼다. 직장에서 눈치 보는 일이 밥 먹듯 했다.

먹고는 살아야 해 아이를 맡길 곳을 물색하다 특수학교에 보냈다. 오래가진 못했다. 아이를 의자에 묶어 앉힌 모습을 목격하고 그 길로 아이를 들쳐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체구가 너무 작아 다른 아이들에게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장애아 전문 어린이집에 보냈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데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학령기가 됐지만 취학유예했다. 두 돌 남짓 한 발육 상태의 아이에겐 교육이 아닌 보육이 필요해서다. 언제까지 취학유예를 할지는 모른다. 학령기 아동을 어린이집에서 보육할 재량권은 어린이집 원장에게 있다. 부부는 혹여나 원장의 비위를 거스를까 봐 ‘복종’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강선우(민주)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취학유예를 한 장애아동은 모두 1천295명이다. 이 가운데 1천104명이 만 6~8세로 어린이집을 다닌다. 정부가 관련 실태조사를 한 첫 사례다. 그동안 나 몰라라 한 셈이다. 지자체도 별반 차이가 없다. 지자체가 기저귀 지원사업을 한다는 소식에 시기를 문의하니 "홈페이지를 확인해 알아서 신청하라"는 식의 반응이 왔다. 오기에 한 달을 넘게 날마다 홈페이지를 뒤져 사업 시작을 확인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10가지에 달하는 서류를 1주일 만에 준비해 제출하라는 조건 때문이다. 의사(대학교수) 소견서를 받아야 하는데 미팅을 잡는 데만 최소 한두 달 대기다. 수요자 입장 고려는 남의 일이다.

부부는 코로나19 팬데믹처럼 아우성도 못한다. 소수라 외면 받기 일쑤여서다. 질병청 통계연보를 보면 2020년 1월 1일 기준 국내 희귀질환 총 발생자 수는 5만2천69명이다. 등록 가능한 희귀질환은 1천14개, 등록된 질환은 691개다. 이 가운데 발생자 수가 200명이 넘는 질환은 50개뿐이다.

부부가 원하는 바는 특별대우도, 특별지원도 아니다. 아이 케어를 위한 최소한의 정보 확인이다. 소수라 외면 받고 목소리를 못 내는 상황도 억울한데, ‘목마른 놈이 우물 파라’는 식의 대처법은 감정의 골만 더 깊게 패이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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