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가 상속재산을 넘는 빚을 물려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 개정안이 9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성년이 된 후 물려받은 빚이 상속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안 날부터 6개월 내(성년이 되기 전 안 경우엔 성년이 된 날부터 6개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이 핵심이다. 현행법상 상속인은 빚과 재산을 모두 승계하는 ‘단순승인’, 상속재산 범위 내 빚을 갚는 ‘한정승인’, 둘 다 포기하는 ‘상속포기’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상속재산보다 빚이 많다면 당연히 두 번째나 세 번째를 택하는 게 유리하다.

문제는 이런 의사표현이 없을 경우 단순승인으로 간주돼 부모 빚을 떠안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러한 원인이 부모 간 별거와 이혼, 가족의 해체 등 미성년자 본인으로선 ‘어쩔 수 없는 환경 변화와 이로 인한 정보의 부재’인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 한정승인 혹은 민법 제1019조 제3항에 정한 특별한정승인을 별도로 하지 않으면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후 이를 새롭게 알더라도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가혹하고 무책임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상속채무를 떠안은 미성년자는 파산으로 삶에 제약을 받거나 면책 후에도 일정 기간 대출이 제한되는 불이익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한다. 법정대리인의 무지와 과실 때문에 미성년자가 자신의 인생을 이런 ‘빚 대물림’으로 시작하도록 방치한다는 건 상식적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못하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 5년 동안 미성년자 파산 신청 사례만 80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을 몰라 파산 신청조차 하지 못한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그 피해는 훨씬 더 크리라 추산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은 진짜 약자를 위한 제도 개선으로 환영할 만하다. 최근 법무 쟁점에 관한 여야 간 대립이 첨예한 상황이지만, 이번 사안에 대해서 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신속히 통과시켜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미성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과연 미성년자에게 단순승인이 적합한 제도인지, 아예 한정승인만 가능하도록 법제화하면 안 되는지 좀 더 적극적인 보호책을 고민하고 내놓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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