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아버지를 둔 부유층 출신의 16세 소년 홀든 콜필드는 성탄절 휴가 직전 명문 사립학교로부터 퇴학 통보를 받는다. 이유는 성적 불량이었다.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 점수를 받은 홀든은 학교가 지긋지긋하다. 퇴학 통보도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홀든은 퇴학통지서가 집으로 배달되기 전, 3일 동안 뉴욕을 배회한다. 낯선 뒷골목을 떠돌며 그는 신뢰할 수 없는 기성세대를 만나고 오염된 현실을 직면하며 더 큰 상실감을 맛본다. 기성세대의 위선과 기만에 절망한 홀든은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를 지켜주는 사람,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안전을 수호하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자 한다. 

 이는 1951년 발표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줄거리로, 작품은 출간 이후 예상치 못한 반향을 일으킨다. 이른바 샐린저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청년들의 엄청난 공감과 지지가 이어지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거친 언어, 신성 모독, 성적 암시 등의 이유로 1980년대까지 미국 학교에서는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한 존 레논을 살해한 범인의 집과 케네디를 저격한 장소에서 해당 책이 발견되면서 범죄를 조장한다는 논란이 이는 등 「호밀밭의 파수꾼」은 숱한 논쟁 속에서도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영미문학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2017년 개봉한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는 작가 J. D.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 캐릭터를 창조한 20대 시절을 다룬다.

 육가공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경제적 아쉬움 없이 성장한 샐린저는 집안의 문제아로 낙인 찍힌 지 오래다. 성적 불량으로 자퇴를 반복한 샐린저는 컬럼비아대학에 정착하기까지 오랜 시간 방황했다. 또래보다 예민하고 조숙했던 샐린저는 첫사랑 우나 오닐과 대학의 문예창작 교수인 위드 베넷을 만나며 작가로 성장한다. 사교계의 유명 인사인 우나에게 잘 보이기 위한 문예지 등단 노력은 지도교수와 깊은 대화를 통해 작가, 창작, 글쓰기에 대한 이해로 넓어진다. 

 샐린저는 글쓰기를 통해 안정을 찾는 듯했으나 이내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이 그의 삶을 뒤흔든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도 종이와 펜을 휴대하며 창작을 계속한 끝에 전쟁이 종식된 후 그는 자신의 첫 장편인 「호밀밭의 파수꾼」을 여러 우여곡절 끝에 발표하게 된다. 기성세대에 반기를 드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전후의 시대상과 맞물려 큰 인기를 얻게 되고, 1960∼70년대에 이르러서도 위선이 아닌 자유를 부르짖는 청년들에게 교본으로 여겨질 만큼 그의 첫 장편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작가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자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홀든 콜필드처럼 작가는 냉소와 염세적 태도를 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치열하게 이상을 추구했다. 허위로 가득 찬 통속적인 삶보다는 자신만의 뚜렷한 가치관과 신념 속에서 평화와 행복을 바란 그는 1965년을 기점으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며 명상과 글쓰기에 전념하며 90평생을 수도자처럼 살았다.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평생을 글쓰기에 헌신한 예술가의 모습에서 창작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숭고함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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