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며칠 전 2020 제12회 밀레니엄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어느 발달장애 가족의 일상을 엿보는 음악영화 ‘녹턴’이 개봉해 장애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방송 피디 출신인 정관조 감독은 2017년 8월, SBS 스페셜 2부작으로 방영돼 화제를 모으며 한국 독립PD상을 수상했던 ‘서번트, 성호를 부탁해’ 참여 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버전의 극장용 영화를 추가 편집으로 완성했다. 

‘장애를 가진 천재 음악가’라는 소재를 활용한 영화나 드라마는 의외로 드물지 않다. 조현병을 앓던 실존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일화를 묘사한 ‘샤인’ 그리고 최근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자폐아의 음악적 재능과 장애인으로서의 일상이 관심을 끈다. 비장애인에 비해 압도적인 집중력에 기반을 둔 음악적으로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 구분된다. 

영화 ‘샤인’의 실제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74)은 무대에 오르면 피아노까지 뛰어가서 구부정한 자세로 피아노 앞에 서서 객석에게 인사를 하는 대신 양쪽 엄지손가락 두 개를 흔들고 재빠르게 피아노 의자에 앉아 계속 중얼거린다. "더욱 행복하게." "항상 똑같은 데이비드." 이렇게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해서 내뱉은 후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연주를 하면서도 그의 입에선 짧은 단어들이 계속 튀어나온다. 그 엉뚱한 행동의 연주로 인해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청중 얼굴은 데이비드의 행복함을 다 함께 느끼는 듯이 모두 미소를 띠고 있다. 부인 길리언은 "데이비드는 평소에도 만나는 사람 전부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고자 하는 열망에 휩싸여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 음악에 천재적 재능이 나타나는 현상을 음악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라고 한다. ‘서번트 증후군’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지만, 뇌의 좌반구에 손상을 입을 경우 뇌의 우반구가 발달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뇌의 우반구는 공간지각 능력이 뛰어나 예술활동 능력이 발달한다. 이들의 뇌구조는 일반인과는 달리 창의력과 예술성을 주관하는 우뇌가 이성을 담당하는 좌뇌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아서 그들의 창의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재능을 펼치게 돼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영국의 신경과 전문의인 올리버 색스가 쓴 「뮤지코필리아(Musicophillia;음악사랑)」에서는 음악적 성향은 인간 본성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병원에서 직접 만난 환자들을 중심으로 음악이 인간의 뇌와 삶 그 자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서술했다.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 사고나 질병, 치매로 좌뇌가 손상되면서 동시에 서번트 능력을 갖게 되는 사례를 들었다. 번개를 맞고 갑자기 음악을 사랑하게 된 의사, 바흐의 칸타타 전곡을 모조리 외우는 음악 서번트, 라장조 음악을 들으면 파란색을 보는 작곡가, 지능지수는 낮지만 2천 곡이 되는 노래를 30개의 언어로 부를 수 있는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 등이다. 이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음악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요즘 코로나로 사람들이 우울하고 힘들어할 때 그들은 더욱 행복하고 즐겁게 음악과 더불어 살고 있으니 음악 서번트를 가진 사람들은 장애가 아니라 특별한 재능을 지닌 축복 받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 올리버 색스의 말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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