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현재 재외동포는 180개국에 약 730만 명인데, 그 가운데 260만 명이 미주지역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주지역 이민은 최초의 해외 집단 이민인 하와이 이민으로부터 시작됐고, 그 출발은 1902년 12월 제물포에서였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을 계기로 해외 이민이 중단되기까지 7천 명이 넘는 한인들이 하와이에 상륙했다. 1830년대부터 노동집약적 사탕수수 농업을 시작한 하와이에서는 노동인력이 필요해지면서 먼저 중국인과 일본인 노동자들이 투입돼 정착해 있었고, 규모가 커지자 그들 사이에 노동쟁의가 발생했다. 그 대책으로 필리핀과 한국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했다.

초기 하와이 이민자들 중에는 미혼의 젊은 남성 노동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결혼 문제가 심각했다. 또한 하와이의 한인 노동자들은 이동률이 높아 농장주들도 한인 노동자들을 안착시키기 위해 미혼 남성들의 결혼을 추진했지만, 독신의 한인 남성들이 하와이 현지에서 타국인과 결혼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고국에서 이른바 ‘사진신부(picture bride)’를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미주지역에 사진신부가 언제부터 왔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1910년부터 시작돼 1911년께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하와이에 첫 번째 사진신부는 ‘국민보’ 1910년 12월 6일자에 이내수와 약혼한 한국 부인이 도항(渡航)했는데, 민찬호 목사가 이민국으로 가서 혼례식을 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사진신부로 온 여성들의 뒷날 구술기록을 보면 하와이가 지상의 낙원이라는 말에 현혹돼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신랑이 신부를 불러들이기 위해 나이를 속이거나 사진을 젊게 조작했다. 하와이에 온 사진신부는 1910년에서 1924년 사이에 약 600명에서 1천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5천여 명에 달하는 독신 남성 수에 비해 사진신부는 1천 명 정도로 비록 숫자는 적었지만 한인사회에 끼친 영향은 컸다. 이들은 단체를 조직해 친목을 도모하거나 독립운동도 전개했는데, 하와이 여성단체들에서 활동했던 대표적 여성이 김주수, 박금우, 심영신, 이숙자, 이영옥, 이희경, 임차순, 천연희 등이다.

특히 이 가운데 천연희(1896~1998)는 사진신부로서 그야말로 입지전적(立志傳的)인 활동을 했던 여성이다. 그는 영남 출신으로 1915년 6월 20일 29세 연상의 길찬록과 결혼하기 위해 사진신부로 하와이에 도착했지만 남편이 자신보다 29살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실망했다. 이후 알코올홀릭이던 첫 번째 남편과 못된 성격의 두 번째 남편 사이에서 여섯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지 못했던 두 전남편 덕분에 끊임없이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마우이 농장 노동자의 옷을 빨아주는 것으로 시작해 바느질, 조리사, 미군 상대 양복점 겸 세탁소 일, 한인기독교회 부속 한글학교에서 한글교사, 음식점 운영, 여관 운영, 파이애플 공장, 하숙집 운영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또한 국민회 회원으로 가입하고 활동하다가 1921년 동지회가 조직되자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런가 하면 이영옥(1901~1991)은 경남 함안 출생으로 1918년 5월 나이가 27살이나 많았던 정봉원의 사진신부로 하와이에 왔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어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됐다. 이후 동지회 회원, 대한부인구제회와 영남부인회 임원으로 활동했다. 

심영신(1882~1975)은 학력이나 재력보다는 종교적 믿음과 애국심으로 더 알려진 여성독립운동가였다. 황해도 송화군 출생으로 젊어서 과부가 돼 아들 하나를 데리고 1916년 조문칠과 결혼하려고 하와이에 왔다. 어릴 때 김구와 앞뒷집에 살아 늘 서신 왕래가 있었으며, 이런 연유로 임시정부를 도와 헌신했다.

미주지역에 사진신부가 들어오고 자녀가 생기면서 교육을 통해 문화적 전통과 관습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한인단체, 한인교회, 한인학교 등이 지속적으로 유지·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사진신부는 미주지역 한인사는 물론 한인 여성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역사적 산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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