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기 미추홀소방서장
정상기 미추홀소방서장

송나라 말기 시인 방회의 시 ‘입추’에는 서사덕음(暑赦德音)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뜻을 풀이해 보면 더위를 면하는 것이 마치 죄를 감해 주는 임금의 조서와 같이 기쁘다는 뜻이다. 

에어컨이나 냉장고가 없던 시절, 사나운 더위는 마치 견디기 힘든 형벌과 같았을 게다. 시인은 입추가 돼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것을 마치 온 백성이 지독한 형벌 속에서 허덕이다가 임금이 내린 감형의 조서를 듣고 기뻐하는 것 같다고 비유했다. 이처럼 요즘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큰 은혜를 베풀어 주는 마냥 달콤하다.

하지만 소방관으로서 선선한 바람이 그저 기쁘지만은 않다. 바람이 선선해지고 기온이 내려가는 것은 반대로 화재가 빈번해지는 계절이 다가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천의 지난 5년간 가을철 화재 1천34건 중 추석 연휴에 발생한 화재가 80건으로 7.7%에 달한다. 특히 가을철 화재 사상자 중 추석 기간 화재로 인한 비율이 12%로 매우 높은 만큼 소중한 이를 만나는 자리인 한가위가 재난으로 인해 망쳐지지 않도록 소방서는 바빠지고 대원들은 더욱 긴장한다.

기본적으로 화재를 예방하는 방법에는 가스 밸브 확인, 가스레인지나 버너 같은 화기나 열을 다루는 기구의 안전점검 등이 있겠으나, 필자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방법은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를 통한 근본적인 가정 내 안전조치다. 주택용 소방시설에는 소화기와 단독경보형감지기가 있으며, 최근 각 지자체와 소방서의 홍보활동으로 소화기의 중요성은 널리 인식됐고 사용법 또한 여러 교육을 통해 숙지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단독경보형감지기가 무엇인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단독경보형감지기란 추가로 다른 설비에 연결하지 않고 스스로 열이나 연기를 감지해 경보를 울려 조기에 화재를 발견하거나 대피할 수 있게끔 해 주는 설비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쉽게 구입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하나의 장치로 단순화돼 고장 우려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자동화재탐지설비 같은 경보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 등은 당연히 설치돼야 하고 빌라, 아파트 같은 별도의 경보설비가 있는 건물 또한 단독경보형감지기를 추가 설치한다면 혹시라도 기계적 문제로 인해 경보설비가 작동하지 않았을 때 우리 소중한 가족과 친구에게 화재 사실을 알려 인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가을로 접어드는 요즘, 서사덕음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선 화재 예방이 필수다. 이번 추석에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주택용 소방시설을 선물하면 어떨까. 혹여 주택용 소방시설이 설치돼 있다면 차량용 소화기 선물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혹시 모를 차량 화재를 대비해 운전석 가까운 곳에 비치함으로써 초기 진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나긴 장마와 폭염 끝에 온 서사덕음을 즐겁게 만끽하기 위해 조그마한 안전을 선물해 큰 위기를 예방하는 추석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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