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경제 판도가 달라졌다. 다량의 화폐가 한꺼번에 시장에 풀리면서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의 상승장이 열렸다. 당시 주식과 코인으로 큰 수익을 올렸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한 시류에 합류하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받아 투자하는 ‘영끌’과 ‘빚투’가 등장했다. 부동산 가격 또한 폭등해 본인 소유의 집이 없는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거지가 됐다는 뜻의 ‘벼락 거지’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 신조어에는 상대적 박탈감이 진하게 배어 있다. 광풍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당시 뜨거웠던 투자 열기는 열심히 일해 아낀 월급만으로는 평생을 모아도 서울에 집 한 채조차 장만하기 어렵다는 절망적인 상황의 반영이었다. 2015년 개봉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하루 20시간 가까이 일을 하며 성실하게,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허름한 집 한 채를 소유한 여성 노동자 수남의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남편과 함께 작은 집에서 소박하고 무탈하게 살길 바랐던 수남의 꿈은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한다.

 16세의 수남은 인생의 첫 갈림길에 섰다. 중학교 졸업을 끝으로 공장에 취직할 것인가, 아니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엘리트로 살아갈 것인가! 수남은 후자를 선택한다. 학창시절에도 남다른 성실함으로 주산, 부기, 타자 등을 익혀 14개의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지만 입사 첫날 컴퓨터 앞에서 좌절한다. 열심히 습득한 자격증은 지난 시대의 유물이 돼 있었다. 영세한 공장에 취업한 수남은 그곳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다. 그렇게 수남의 인생에도 봄날이 오는가 싶었지만 봄볕은 짧았다. 

 청각장애인인 남편은 수남의 고집으로 청력을 살리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는데, 부작용인 이명에 시달리다 근무 중 사고를 당한다. 침울한 남편을 웃게 할 방법은 내 집 마련이었다. 남편은 입버릇처럼 "집이 있어야 한다"고 늘 말했다. 목표를 위해 수남은 뼈가 부서져라 일했다. 신문 배달, 건물 청소, 명함 돌리기, 식당 주방일 등 24시간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다. 9년 만에 어렵사리 장만한 감격스러운 집에서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건만 남편은 새 집에 며칠 살지도 못한 채 식물인간이 돼 병원에 입원하고, 수남도 병원비 마련을 위해 집을 세놓고 좁디좁은 고시원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 부담에 결국 집을 팔기로 결심하는데, 이번에는 집이 재개발지구에 포함돼 주민 간 이권 다툼에 휘말린다.

 남편과 오손도손 행복하길 바랐던 수남의 꿈은 지나친 욕심이었을까!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갈수록 수남의 삶은 더 깊고 지독한 진창에 빠져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40대 여성 수남을 통해 그녀가 겪어 온 우리 사회의 교육, 취업, 주택, 재개발 등 다양한 사회문제와 구조적 모순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유쾌한 분위기로 풀어낸 연출 방식은 역설적으로 더 큰 슬픔을 느끼게 한다. 7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성실한 삶이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몰고 온 투자 광풍을 떠올리니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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