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BMW, 살바토레 페라가모, 샤넬, 루이 비통, 롤렉스...

길에서 눈만 한번 돌리면 값비싼 외제 자동차가 눈에 띄고 백화점에 발만 디디면 고가의 유명상표 상품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시대다.

이른바 '명품'이라고 불리는 물건들이 이제 일부 부유층만의 문화가 아닌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이러한 사치품의 역사와 가치, 사회문화적 영향 등을 짚은 책 '사치의 문화'(질리포베츠키.엘리에트 루 공저. 유재명 옮김)가 번역돼 나왔다.

'사치'와 '사치품'에 대한 두 편의 시론(時論)을 묶은 책이다. 책은 '사치'와 '사치품'이라는 공통의 대상을 다루고 있지만 관점과 접근방법이 전혀 다르다.

프랑스의 젊은 철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질 리포베츠키는 첫번째 글 '영원한 사치, 감동의 사치'에서 '사치'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는 사치가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사회, 종교, 권력, 예술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분출되어 어떤 의미로 발전해왔는지, 무엇에 주안점을 두고 진행돼왔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 명문 상경계 그랑제콜 중 하나인 에섹(ESSECㆍ고등경영대학원)과 연계된 'LVMH'(Louis Vuitton - Moet - Henessy)그룹 자문교수인 엘리에트 루는 두 번째 글'사치의 시대, 상표의 시대'에서 상표의 정체성과 함께 시간 속에서의 상표 경영을 탐구하고 마케팅과 기호학적 측면에서 '사치'에 접근한다.

그는 경영학적 측면에서 사치가 어떻게 산업이 되었으며 산업화 과정에서 사치품 마케팅은 무엇에 주안점을 두고 진행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각각의 글은 나름의 이론을 유지하며 딱히 공통메시지를 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글에는 연결점들이 존재한다. 두 글은 사치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인과 사회에 어떻게 수용돼 현시성을 갖게 됐는지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저자들은 북아메리카 북서해안의 인디언들이 자녀의 탄생, 성녀식(成女式), 장례, 신분과 지위의 계승식, 신축 가옥의 상량식 등의 의식에 사람들을 초대하여 베푸는 축하연인 '포틀래치'(Potlatch), 집단과 집단의 평화 유지를 위해 멜라네시아인이 행하는 의례적(儀禮的) 교환행위인 '쿨라'(Kula), 그리고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서 사치의 기원과 본질을 찾고 있다.

즉, 최초의 사치는 개인보다는 집단, 물건보다는 인간, 갈등보다는 평화, 지탄보다는 명예를 우선하는 축재(蓄財)가 아닌 베풂이었다는 것. 그러나 계속되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사치의 의미와 형태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사치는 조건 없이 너그러움을 베푸는 원시시대의 사치, 골동품과 예술품, 예술에 대한 후원과 구매, 투자라는 모습으로 드러난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사치, 사회변혁과 사회발달로 인해 자연스럽게 부를 드러낸 근대사회의 사치, 불확실한 시대에 안전과 건강, 미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현대사회의 사치 등으로 변화돼 왔다. 문예출판사 刊. 256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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