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조선의 근대가 동틀 무렵, 전함과 병력으로 무장한 서구 열강과 일본의 해군력은 나날이 강해졌고, 그 와중에 병인·신미양요, 운요호포격 사건 등 여러 차례의 외침이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개항 전부터 이양선(異樣船)의 출몰과 외국의 집채 만한 화륜선과 대포를 장착한 함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해양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첫 시도로서 1881년에는 일본의 지식인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개화승(開化僧) 이동인을 고종의 참모관으로 임명해 일본으로부터 군함 구입의 비밀 임무를 수행토록 했으나 일본으로 출발 직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이후에도 군함 도입 계획이 번번이 좌절됨에 따라 정부는 우선 해군 양성계획을 먼저 착수하는 것으로 방침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1892년 12월 고종은 근대 해군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영국총영사에게 근대 해군 창설, 해군사관학교 설립 그리고 군함 1척의 판매 등에 협조할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조선의 빈약한 재정 형편과 정치적 이유로 조선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선 정부는 1893년 1월 경기 연안의 해안 방어를 전담하던 기연해방영을 해연총제영(海沿總制營)으로 개편하고 용산에 있던 본영을 강화유수부 경내로 옮겼고, 3월 15일 민응식(閔應植)을 해연 도총제사(海沿都總制使)로 임명해 강화유수를 겸임토록 했다. 민응식은 임오군란 당시 충주의 자택을 명성황후의 피신처로 제공했던 민씨 척족 중의 실세 인물이었다.

3월 22일에는 해군 사관 및 하사관 양성을 위한 해군학교 설치령을 반포했다. 이에 따라 해군 장교를 양성하기 위한 ‘수사해방학당(水師海防學堂)’을 별도로 설치했는데, 강화의 해연총제영에서 설치했다 해 ‘총제영학당’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청국이 운영권을 갖고 있는 조선해관(세관)에서 비용을 지원받아 강화도 갑곶진 진해루 부근의 기존 수군 관아를 개·보수해 교사로 활용하고, 일부 부지를 정비해 교련장을 마련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해군을 양성하는 사관학교다.

설립이 구체화되자 영국 정부는 조선에서의 기득권 감소를 우려해 해군교관단 파견을 승인하고 1893년 6월 21일(음력 5월 8일) 교관 요원 2명의 고용계약서를 작성했다. 1893년 9월 15세 이상과 20세 이하의 생도 38명과 수병 300여 명을 모집했는데, 육영공원의 영어교사 영국인 허치슨이 부임해 영어교육부터 시작했다. 다음 해인 1894년 5월 군사학 교관인 콜웰 해군 예비역 대위와 교련 조교 커티스 포술 하사관은 부인들과 함께 영국을 떠나 조선에 도착했다. 콜웰은 사진기를 준비했고 그 부인은 채소 씨앗을 준비했다 하는데, 뿌리가 보라색인 순무였다고 추정한다. 이때부터 그들은 교과과정에 따라 군사학과 교련 교육을 실시해 사관생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강화도에 학당과 군영을 설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학당의 규모, 위치, 생도 교육 등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강화도의 해군력에 관한 정탐 보고서를 올릴 정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사교육이 시작된 지 3개월째인 1894년 7월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이어 일본군이 경복궁을 무력 점령한 이후 해군학교를 맡았던 민응식이 파직(罷職)됐다. 또한 해연총제영을 없애고 해군의 지휘를 강화영으로 이관함에 따라 총제영학당 역시 유명무실한 교육기관으로 전락해 1기 졸업생도 배출시키지 못한 채 폐교되고 말았다.

현재 대한민국 해군은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을 총제영학당으로 삼고 있지는 않다. 다만, 해군은 총제영학당 터에 대해 문화재 지정을 요청해 인천시는 1999년 6월 이 학당이 있던 강화읍 갑곶리 1061 일대를 ‘강화 통제영학당지’라 명명하고 기념물 제49호로 지정했다. 2009년 4월 29일에는 해병 제2사단이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에 맞춰 이곳에 표지석을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총제영’ 학당이 어떤 연유로 ‘통제영’ 학당으로 바뀌어 부지불식간 고착돼 왔는지, 해군사관학교 설립의 효시라는 의미 부여에 왜 인색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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