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faction)’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로 실존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해 재창조한 장르를 말한다. 팩션은 실재한 역사를 가공했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유발한다. 다만, 가공의 상상력을 사실로 믿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에 역사 왜곡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역사적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창작이 이뤄져야 한다. 

 2012년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조선의 15대 왕인 ‘광해’의 양면성에 상상력을 덧댄 작품이다. 광해는 활동 시기에 따라 그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는 인물이다. 임진왜란 당시, 피난 간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국가를 책임진 인물이 바로 광해였다. 왕위에 오른 뒤에도 잠시나마 세금체계를 개선해 백성들의 과도한 부담을 덜어주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낭비와 과도한 숙청으로 폭정을 일삼다 결국 폐위됐다. 영화 ‘광해’는 이처럼 상반된 행보를 보인 모습을 ‘하나의 역할을 수행한 두 명의 왕’이라는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광해 8년인 1616년 2월 28일. 승정원일기에 "숨겨야 할 일을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라"는 한 줄과 함께 15일간의 행적이 사라졌다. 기록되지 않은 15일,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암살 위험을 느낀 광해는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의 대역을 찾으라고 지시한다. 허균은 왕과 용모가 똑같은 기방 광대 하선을 발견하고 왕이 쓰러져 생사의 갈림길에 선 시간 동안 그를 꼭두각시 왕으로 앉힌다. 왕의 말투와 행동을 흉내내며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즐기며 단순하게 지내던 하선은 왕의 치료가 길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국정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백성의 삶과 분리된 정치 현실을 목도한다. 사리사욕과 사대주의에 빠진 관료들의 부패한 모습에 ‘내 나라 내 백성의 소중함’을 설파하며 대신들에게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는 자기 목소리를 낼 만큼 하선은 왕 노릇에 진심을 다하게 된다. 예민하고 난폭했던 예전과는 달리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에 왕실이 술렁이고, 예상치 못한 광대의 행동과 발언에 허균도 당황한다. 이내 두 명의 왕이 존재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가짜 왕인 하선은 그 존재 자체를 지워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 8년 중 실재하지 않는 보름간의 행적을 천민 광대가 다스린 시간이라는 과감한 발상으로 흥미롭게 역사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 1천200만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한 이 작품은 흠잡을 데 없는 구성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광대 임금님으로 분한 하선이 백성을 귀하게 여기고 따뜻한 마음으로 국정을 돌보는 모습을 통해 참된 지도자상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조선시대에도, 현대에도 국민들이 희망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한결같다. 민심에 귀 기울이고 민생을 챙기는 리더다. 이는 앞으로 변치 않을 국가 지도자의 덕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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