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철 인천행정동우회 기획정책분과위원장
최계철 인천행정동우회 기획정책분과위원장

지방공무원들의 필독서인 다산(茶山)의 「목민심서」는 청렴과 애민사상이 절절히 녹아 있는 지방행정의 교과서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8대 연속 홍문관을 지낸 명문가가 자신에 이르러 폐족이 됐음을 담담히 알린다. 그러면서도 "폐족이 글을 읽지 않고 몸을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 구실을 하랴"며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큰길을 제시한다.

무릇 시(詩)는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슬퍼하고 세상을 개탄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며 참된 것을 찬미하고 거짓된 것을 풍자하며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라며 시를 짓는 자세를 일깨운다. 임금을 성군으로 만들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는 마음을 갖지 못한 자는 시를 지을 수 없다고 하며 두보의 시를 읽으라 한다. 다산의 이런 사상은 "시는 정치의 득실을 관찰(可以觀)하며, 시는 원망할 수 있다(可以怨)"는 논어의 양화(陽貨)에 나오는 대목과 일치한다. 시는 통치자의 잘잘못과 윗사람의 잘못된 정치를 비평하고 풍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산이 남긴 시 중에서 애민정신의 최고 시로 여겨지는 애절양(哀絶陽)에는 백성을 대하는 측은지심의 애틋함이 그대로 배어 있다. 절양이란 남자의 성기를 자른다는 뜻이다. 돌아가신 시아버지와 배냇물도 안 마른 자식도 군적에 실리는 현실에서 젊은 아낙은 관청의 문을 두드리며 울부짖는다. 죽은 지 3년 된 사람과 태어난 지 3일 된 아이까지 세금(軍布)을 징수했던 것이다. 남편은 세상을 한탄하며 스스로 생식기를 잘랐다. 부호들은 일 년 내내 풍악을 즐기며 낱알 한 올, 비단 한 필 바치는 일 없는 당시의 현실을 개탄한다. 이른바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인 삼정의 문란으로 극에 달한 조선후기 힘없는 백성들의 실상을 노래한 것이다. 매관매직의 탐관오리들과 토호세력들의 합작으로 피폐해진 지방행정의 실태를 백성들과 같은 처지로 슬퍼한 것이다.

"부잣집 대문에는 술과 고기 썩는 냄새 진동하는데, 길가에는 얼어 죽은 시체가 나뒹구네.(朱門酒肉臭, 路有凍死骨)" 이는 두보의 시 자경부봉선현 영회 오백자(自京赴奉先縣 詠懷 五百字)에 나오는 대목이다. 43세의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우위솔부(右衛率府)의 주조참군(胄曹參軍)이라는 7급 정도의 하위관직을 얻어 일단 굶주림은 면하게 됐다고 기뻐하며 친척에게 맡겨 둔 식솔들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여산(驪山) 기슭에 다다랐다.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온천에는 양귀비(楊貴妃)에 빠진 현종과 고관대작들이 환락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봉선현에 당도해 보니 어린 자식은 이미 굶어 죽어 있었다. 두보 또한 백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눈으로 직접 목도하고 몸소 체험한 현실을 엄정하면서도 사실적으로 시에 반영했다. 

다산과 두보의 시는 현실과 역사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나라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관리들과 그들의 부패·무능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절창(絶唱)인 것이다. 특히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다산과 두보의 시에 담긴 정신을 새겨야 한다. 마음에만 간직하거나 입으로만 뱉는다면 소용이 없다. 다산이 "백성들은 땅을 파고 갈아먹고 살지만 관리는 백성의 등을 파서 주지육림한다"고 했던 절규의 의미를 말이다. 민선8기의 시정은 견유학파(犬儒學派)처럼 메아리 없는 허공의 애민(愛民)이 아니어야 한다. 헤아림의 시정, 이것이 인천의 인(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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