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시조’는 우리나라의 정형시다. 1천여 년의 역사적 전통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 위상은 나약하다. 현실은 자유시의 아류인 양 푸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우선 문교당국의 시조 교육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현행 중·고 교과서를 검토한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시조는 별도 단원은커녕 그것도 자유시 속에 몇 편을 섞어 놓아 둘을 쉬이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 1960∼70년대만 해도 중·고 교과서에 시조 단원이 별도 설정돼 있었는데, 되레 퇴보한 셈이다.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가 자유시보다 더 많이 그 나라 국민 속으로 들어가 통용되는 것과 천양지차다. 

 작금 한국문인협회에는 회장단 선거운동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참여한 시조 분야 입후보자들 중 이런 사실을 개선 공약으로 내놓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자유시인이기도 한 나는 자유시를 폄하할 의도가 없다. 다만, 자유시는 자유시 나름의 특성을 살리되, 그와 엄연히 다른 시조를 아류화하지 말자는 것이다. 

 또한 일부 시조시인들의 작법 형태에 문제가 있다. 시조의 지나친 배행 처리나 자수율까지 다 무너뜨려 자유시를 닮은 서술체 문장을 현대 시조라며 포장한다. 올 9월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포털에는 "현대 시조는 정형시이면서 자유시이고 자유시이면서 정형시가 돼야 한다. 현대 시조가 과거의 시조와 다른 점은 정형이라는 틀에 구속받지 않은 데 있다"라고 검색된다. 가관이다. 아무리 앞뒤 문맥을 짚어 이해하려 해도 이것은 아니지 싶다. 시조 본래의 속성인 정형률(定型律)을 무색게 한다. 이러다가 시조는 자유시 속에 녹아들어 존재 가치도 없게 될지 모른다. 

 수년 전부터 일부 시조단체에서 시조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한 바 있다. 나라 안에서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데 등재 추진이 쉽잖을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장려돼 이미 유네스코에 등재된 일본의 하이쿠와는 그 처지가 판이하다.

 이처럼 척박한 우리 시조의 현실 앞에 외려 나라 밖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본다. 지난 시절, 유럽에서 세계문학사 연구 중에 외국인이 관심을 갖는 한국시는 3분의 2가량이 시조 분야라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 속에 새삼 시조를 공부하게 됐다는 어느 한국인 학자의 얘기나, 미국에 교환교수로 간 시인이 한국시 강의를 할 때 미국 학생들이 자유시에는 별 관심이 없다가 시조로 바꾸니 확 달라져 관심을 갖더라는 얘기가 있다. 또한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회에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초대됐을 때, 외국인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가인 시조작품이 왜 전시되지 않았느냐며 반문했다고 한다. 시조는 국내의 부정적 상황과 달리 국외에서 오히려 살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2016년 10월 9일 KBS 한글날 특집에서 리투아니아인이 윤선도의 시조 ‘오우가’를 외우면서 한글을 공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근년 세계 각국에는 ‘세종학당’을 통한 한국어 공부 붐이 일고 있다. 세종학당의 한글 보급 과정 속에 가칭 ‘시조로 배우는 한글’ 과목을 추가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한국인은 우리 전통 시조를 홀대하는 반면 거꾸로 외국인이 시조를 소생시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 ‘한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만큼 ‘한글’과 ‘시조’는 한국 정신문화(K-culture)의 핵심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정부 문교 당국도, 시조단도 각성해야 한다. 시조가 살아남는 길은 정도(正道)를 가는 것이다. 정도란 ‘정형률’을 지켜 짓는 것이다. 정형률을 지키지 않으면 일반 초심자나 외국인은 상당한 혼란과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일반인이 한 수 시조를 지으려면 어느 기준을 선택해야 하는지(범국민 문학화의 측면), 외국인이 접하는 한국의 정형시는 과연 무엇인지(세계화의 측면)에 대해 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정형률을 잘 지켜 창작된 작품이 시조다운 시조다. 시조가 시조다울 때 살아날 수 있다. 단시조로 더 살려 본다.

- 안팎살이 - 

 우물 안 개구리가
 제 하늘이 전부랄 때
 
 오만가지 피고 지는
 그 바깥 큰 세상에
 
 건져내
 삶다운 삶을
 살게 할 이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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