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라는 말을 많이들 사용하는데요. 결국 남의 문제를 어떻게 자기 문제처럼 생각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생물학에 바탕한 조건이나 경제 조건이 같다는 사실만이 그런 생각을 이끌어 내는 요소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일들을 어떻게 ‘우리의 일’로 생각할까요? 이런 점들을 평론에서 다루고 싶습니다."

‘공감’, ‘공동체’, ‘사회’. 선우은실(30)문학평론가와 짧은 만남에서 가장 많이 화두에 오른 단어다. 평소 활동을 묻는 질문에도, 예술가로서 지향점이나 관심사에 관한 물음에도 이 단어들은 숨 쉬듯 등장했다.

평론이라는, 조금은 낯선 장르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엿보인 고민은 결국 ‘우리 삶’으로 귀결됐다.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훼손하지 않고 어떻게 공동체를 생각하는가"하며 활동한다는 선우 평론가 이야기를 들어봤다.

선우은실 문학평론가가 지난 27일 인천시 중구 미추홀문화회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선우은실 문학평론가가 지난 27일 인천시 중구 미추홀문화회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문학평론이라는 장르가 독자들에게는 낯설지 모르겠다. 어떤 일을 하는가.

▶여러 번 듣는 질문이지만 때마다 답하기 곤란한 부분이다. 소설이나 시 뒤에 붙는 ‘해설’이 가장 쉽게 접할 만한 비평 작업이 아닐까 싶다. 또 문학 잡지에서 아예 ‘문학 평론’ 코너로 실린 글이 비평의 대표라 할 만하다. 시나 소설에 견주면 많이 출간되지는 않지만 비평집 단행본도 있다.

문학평론은 원칙으로 말하자면 인식하는 행위에 가깝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 중 특정한 부분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의견을 제출하는 행위, 이 과정에서 ‘나’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구성됐고 그러한 감각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도록 만드는지 성찰하는 일이 곧 비평이라고 생각한다.

문학 작품이 이런 방식으로 삶의 한 단면들을 또 다른 ‘문학세계’로 재현했다면, 다시 구성한 작품을 분석하고 그러한 행위에 자기의 삶을 겹쳐서 보려는 노력이 하나의 비평이 아닐까 싶다.

-문학평론을 시작한 기회는.

▶학부 수업 중 ‘문학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비평적 사고에 대해 처음 경험하게 됐다. 여러 가지 비평하는 관점으로 텍스트를 읽는 수업이었다.

한 작품을 맑스주의, 정신분석학, 페미니즘 등 여러 갈래로 읽는 상황을 보고 여러 개의 다른 이야기를 읽는 듯하다고 생각하며 큰 매력을 느꼈다. 이후 비평 관련 학회에 들어가거나 수업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했다.

본격 ‘비평’을 인식하고 쓰게 된 시기는 이때부터였지만, 사실은 책 읽기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한 더 오래전 시간이 없었다면 대학 때 비평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듯싶다.

그런 뜻에서 문학평론을 시작한 기회라고 보긴 어려워도 크게 영향을 준 계기 또는 시점을 생각하면 훨씬 더 이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활동을 하며 특별히 관심을 두는 주제나 키워드가 있나.

▶청년·여성·노동을 주로 생각하면서 쓴다. 세 개의 키워드 모두 저와 관련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고, 최근 많이 다뤄지는 키워드라고도 생각한다.

미래를 타진하는 일이 전과 같지 않다. 일자리 문제도 그렇고 젠더 혐오(또는 약자 혐오) 정서가 팽배한 현상도 뭔가 징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그렇게 됐는가’를 따져 묻는 일 못지않게 그렇게 묻는 과정이 ‘어째서 중요한가’에 대해 골몰하게 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시대 정서가 변화한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세 가지 키워드는 최근 사회문제로 많이 언급되는데, 삶을 반영하는 핵심 단어이기에 작품에서도 많이 다뤄진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비평 주제가 된 측면도 있다.

한 작가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에게 남긴 감사의 글.
한 작가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에게 남긴 감사의 글.

-제시한 키워드들이 모두 사회 현안이다. 평론은 결국 사회문제를 다루는 작업인가.

▶사회 현안이랑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작품에 대해 얘기를 하더라도 그 작품도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는,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다시 이야기를 할 만한 일들을 다룬다.

이 시대 어떤 청년의 감수성이나 그런 것들을 투영해 그 작품을 다시 봤을 때 또 새롭게 읽히는 지점들이 있다. 실제로는 없는 일을 다루지만, 현실 감각 위에서 말을 붙이는 작업이 어떤 주제에 대해 체계 있게 논의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평론을 시작할 때부터 여성·노동·청년에 관심을 둬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작품이 지닌 아름다운 본질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공감을 불러오는 이야기들에 관심을 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관심들이 글을 쓰며 차츰 깊어지는 과정에서 분화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304낭독회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이 낭독회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작가들이 모여서 이 일이 잊혀지지 않게 달마다 날을 정해 낭독 행사를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 저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 낭독자를 섭외하거나 원고를 모으거나 사회를 보는 ‘일꾼’ 역할을 했다.

이 활동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내가 아는 문학이라고 하는 활동이 꾸며 낸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일만이 아니구나’하고 생각하는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좀 더 활동으로 문학을 이해하고 평론가로서 다른 활동들을 하게 된 계기였는데, 운이 좋게도 거의 데뷔를 하자마자 바로 하게 됐다. 많은 작가들이 그저 글로서만 문학을 하는 것은 아니다.

활동가처럼 사회문제에 직접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집회에 가기도 한다. 그렇게 사회에 참여하는 문학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삶과 문학이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활동을 하면서 알았다.

-사람들이 왜 평론을 읽을까. 그리고 평론을 써 보고 싶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요즘 독자들은 ‘평론에 자신을 투영했을 때 공감 가능한 부분이 얼마나 큰가’도 많이 본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설명하는 언어들을 찾는 여러 과정에 시를 읽기도 했고, 소설을 읽기도 했지만, 비평 읽기도 그 중 하나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비평을 쓸 때 주관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들 생각하시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뭘 분석을 하든지 작품에 대한 감상부터 시작해서 거기에 말을 붙이고 골라내는 작업으로 비평 형식을 만들어 낸다.

만약 비평을 한번 해 보고 싶다면 감상부터 시작해 거기에 질문을 한 번, 두 번, 세 번 던져 보라. 예를 들면 ‘이 부분이 좋았다’는 인상이 남았으면 그게 왜 좋았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이유가 있을 테다. 결국 그 이유는 자기가 가진 조건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구성하는 부분이 어떤 요소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변별하면서 정리하는 작업들을 하다 보면 비평과 비슷한 형태가 만들어진다.

선우은실 문학평론가가 지난 27일 인천시 중구 미추홀문화회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선우은실 문학평론가가 지난 27일 인천시 중구 미추홀문화회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평론이 다른 장르와 협업하는 방법은. 지역에서 협업한 경험이 있나.

▶이번에 지역에 문학관을 하나 더 열고 전시 준비를 하면서 작품들을 요약해 제시하고 인터뷰하는 작업들을 함께했다. 그렇게 협업한 경험 자체가 상당히 좋았다. 

비평이라고 하는 작업이 어쨌든 작품을 잘 요약하고 핵심에 대해 잘 짚어 내지만 있는 그대로 보거나 생각하는 작업만은 아니다. 어떤 작품이 예전에는 분단 국가 아픔을 상징하는 작품으로만 해석됐다면, 요즘 관점에서는 젠더 폭력과 관련한 내용들은 좀 아쉽게 느껴진다고 비평할지도 모른다.

지금 청년 관점에서 1980∼90년대 작품들을 어떻게 이야기할지 인터뷰를 진행하는 일 자체가 비평 영역을 공공성으로 환원하고 기관과도 잘 협력한 사례라 생각한다. 이런 작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역에서 청년예술가들이 지속가능한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정책은.

▶평론이라는 영역에 국한해 이야기하자면 생애주기라는 관점에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청년을 예로 들면 경력과 나이에 따라 가능한 일들을 배정해야 한다. 같은 청년이라도 사회 경험이 적으면 노동으로서 가치를 환원하는 일이 가능하고, 경험이 많으면 프로젝트를 알리거나 비슷한 생각을 지닌 청년들을 독려하는 일도 하게 된다.

또 예술가들의 분배 형태에 따라 향유하는 집단도 다르다. 가령 지역 안에서 인구의 나이대를 조사해 어린이가 많은 지역에 청년예술가를 파견했을 때 훨씬 더 반응이 좋으리라 본다. 지원사업 개수 자체를 늘리기보다는 분배하는 방식이 좀 더 세밀했으면 한다.

개인 작업은 결국 공공에 기여할 때 조금 더 그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지원금을 받아서 자신만 만족하는 작업을 하고 끝이 아니라 환원을 하고, 역량을 잘 섞어서 쓰는 제안들이 좀 더 있으면 좋겠다.

-예술활동 지향점과 앞으로 활동 계획은.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고통이 완전히 자신의 불행이나 고통이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 것’인 양 생각하는 상상력조차 발휘하지 못한다면 공동체는 유지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요즘 여러 가지 혐오 정서 때문에 일어나는 범죄를 보노라면 우리는 다 개별로 존재하지만 따로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공존한다.

그렇다면 공존을 위해 시민의식을 키우든지 뭔가를 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도록 만드는 데 문학, 그리고 문학평론 형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평론집과 에세이를 준비 중이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프로필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평론으로 ‘여성시의 분절적 언어성’, ‘약자됨으로서의 개인적 정치성과 에세이라는 형식’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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