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

유사 이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출산과 양육은 여성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고대사회에서도 여성은 지모신(地母神), 신모(神母), 다산(多産) 등 생산의 상징, 자녀의 출산과 양육, 생활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점차 사회가 발전하면서 양육 방식도 다양해졌는데, 특히 부모가 자녀의 출생부터 성장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육아일기’는 무엇보다 소중한 유산이자 역사적 자산이다.

그런 관점에서 인천 여성이 남긴 소중한 기록이 있다. 인천 출신 항일독립운동가 최선화·양우조 부부의 육아일기인 「제시의 일기」와 훈맹정음을 만든 박두성의 딸 박정희의 육아일기인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가 그것이다. 더구나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질곡과 격동의 현장으로 육아일기를 통해 고난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어 시대상까지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제시의 일기」를 남긴 최선화(1911~2003)는 인천 학익동 출신으로 최소정이라고도 불렸던 여성 독립운동가다. 그는 1931년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36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간호대학을 다니다 흥사단에 가입했다. 이 무렵 임시정부 재무차장이던 애국지사 양우조와 만나 그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결혼했다. 

이후 교포 부인들을 단합시켜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하는데, 그 창립 요원이 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면서 한국독립당에 가입했다. 1943년에 이르러 충칭에서 3·1운동 직후 조직됐던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조직에 참여해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고, 서무부장이 돼 독립운동가 김규식의 부인 김순애를 보좌하면서 혁명여성에게 항일의식을 고취, 대일항전 역량을 총집결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여성과 청소년의 계몽·교육에 열성이었다.

광복 후 이들 부부는 1946년 4월 임정 인사 및 그 가족들과 부산항으로 귀국했다. 양우조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최선화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무엇보다 1938년 중국에서 맏딸 양제시를 낳으면서 남편과 함께 육아일기를 겸한 일기를 썼다. 일기는 1938년 7월 4일부터 1946년 5월 4일까지 작성됐는데, 주인공 제시의 성장 모습과 가족사를 중심으로 한 육아 기록이지만, 1938년 7월부터 1946년 4월 29일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일본 공군기의 공습을 받으며 광저우, 류저우, 치장을 거쳐 충칭으로 이동한 과정과 당시 실상이 기록돼 있다. 일기의 내용은 주로 중일전쟁의 전란 속에서 딸 제시가 출생한 것을 시작으로 임시정부 이동기 고난의 행군과 임정요인들의 인간애와 해방의 감격을 담고 있다.

특히 중일전쟁 시기 일본의 공습을 피해 임시정부가 충칭시로 이동하기까지의 실상을 시기별로 정확히 알려 주는 거의 유일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투항했다는 패망 소식을 김구와 임시정부가 1945년 8월 10일 오후 8시(중국시간)에 알게 된 사실도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일기는 1999년 외손녀 김현주에 의해 「제시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또 하나,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를 남긴 박정희(1923~2014)는 한글 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의 차녀로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교사로 활동했다. 22세에 평양의전 출신 의사 유영호와 결혼해 5남매를 뒀고 이들이 장성해 11명의 손자, 7명의 증손자 등 29명 대가족을 이뤘다. 67세에 수채화가로도 데뷔해 화평동 평안의원 자리에서 ‘평안 수채화의 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이 일기는 1945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5남매가 태어나서 한글을 배울 때까지를 기록한 그림 육아일기다. 그 속에서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서울과 평양의 소소한 일상사, 한국전쟁과 전후 경제 발전 속에 중산층의 생활 변화 등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한국전쟁 시기 넉넉지 못한 생활 탓에 일기는 교회에서 버리는 악보 뒷면에 썼고 겉표지는 이불 호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일기 원본은 국가기록원 기록물로 보존돼 있다.

여성 개인의 소소한 육아 기록이 한 집안을 넘어 시대를 증언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역사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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