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운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이명운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인천 배다리의 역사는 한국 근대사에서 한 획을 긋는 장소이며 문화유산이다. 최초의 영화학당부터 100년이 넘는 창영초등학교의 역사,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의 삶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이후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 삶과 학구열이 만들어 낸 곳이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다. 지금은 헌책방 거리로 알려진 곳이 서울 청계천, 대구 중구 남산동, 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 정도다. 인천에서 학창시절 책을 사기 위해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찾아다녔다면 그들은 분명 인천의 중장년이다.

도시개발과 인천의 신도시 건설, 지하철 개통으로 졸지에 인구 감소의 원도심 무게를 감당하게 된 배다리 주변의 금창동 지역이 배다리 헌책방 거리다. 조용하던 동네가 산업도로 관통으로 한동안 지역주민의 갈등을 겪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쇠락의 길을 걷던 이곳이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알려지고 지역활동가들의 20여 년 가까운 노력과 열정이 지금 배다리가 남아 있는 이유다. 오래 빛바랜 흔적을 찾을 수 있고 누군가에는 추억을, 어떤 이에게는 향수를 주기에 충분한 매력도 남아 있다. 촬영지 명소가 되면서 조금씩 소개되고 인천의 문화유산을 알리려는 노력들이 모여 지금의 배다리 헌책방 골목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여기에 힘을 보태는 전시회 행사가 있다. 인천 미술과 서울 갤러리의 협업 전시회로, 인천 헌책방 1호인 문화공간 집현전(대표 이상봉 관장)에서 ‘책자로 보는 도록(圖錄)’ 전시회를 연다. 집현전은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지역에서 단순히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닌 문화를 팔고, 지식을 공유하고, 힐링과 감성을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목적으로 운영된다.

집현전은 예술인을 위한 공간, 시민을 위한 공간, 예술인 지원사업,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예술 지원 공간, 쉼터로서의 역할을 꿈꾼다. 이상봉 관장님은 20여 년의 장애인학교 교사 경험에서 좀 더 따뜻하게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이 공간을 운영 중이다. 이런 연계선상에서 서울 갤러리현대와의 문화 소통 작업이 이번 행복한 추억 소환하기-책자로 보는 추억, 기록의 소환(10월 18일~11월 6일)-전시회다.

배다리 공간은 어쩌면 인천의 성장 과정을 담아놓은 작은 박물관과도 같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생활 터전이요, 3·1운동의 발상지이면서 민족혼이 남다른 동네였고, 근대화의 한국 성장 동력이었다가 원도심으로 밀려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픔도 삼키고 지역을 위한 노력도 남다르게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또 얼마나 변할지는 몰라도 아벨서점(대표 곽현숙)의 무던한 노력, 인천문화양조장(대표 민운기)의 행복한 배다리 지키기와 시민운동도 눈여겨볼 변화였다. 레트로 감성이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드라마 도깨비(2016), 무법변호사(2018), 영화 극한직업(2019) 등 촬영지로도 소개되고 있어 젊은이들의 유입이 늘어나고 문화공간 들이 하나둘 오픈하고 있다.

한때는 40여 곳이 넘던 헌책방이 지금은 5곳만 영업 중으로, 창영초등학교에서 배다리까지 양쪽 도로에 있던 책방거리는 하나둘 사라지고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며 힘든 숨을 쉬고 있다. 올해(10월 1일)도 배다리 ‘인천 헌책방거리 행사’로 ‘2022 배다리 책피움한마당 행사’(8개 문화공간에서)가 펼쳐졌지만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최소한의 지원도, 차량이나 홍보도 다른 축제와 행사에 밀려 너무도 조용히 마감됐다. 아쉬움이 있다면 그날만이라도 지역주민의 축제처럼 진행되는 바람을 기대해 봤지만 영혼 없는 판매대와 서비스, 아 이러고서 여기를 살리자는 데 너무 낙관적이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민간 협력이라는 생각을 하며 내 추억을 소환하는 전시회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문화공간 배다리로 더 알려지기를, 추억 소환을 준비한 집현전과 그동안 노력한 배다리 활동가들과 아벨서점, 한미서점, 삼성서림, 대창서림 대표님들께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인천문화에 대한 오랜 고민이 무모함에 가까운 시도를 이뤄 냈다. 서울의 갤러리가 인천의 작은 공간과 손잡고 인천과 서울을 연결하는 시도, 집현전 전시의 시작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