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가고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사상 유례가 없는 대통령 탄핵과 구속, 장미대선을 통한 새 정부 탄생, 북한의 미 대륙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ICBM 개발 추진에 따른 한반도에서 핵전쟁 가능성 고조 등 그야말로 국내외적으로 핵폭탄급 사건이 줄 이은 한 해였다. 오죽하면 평창 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내지 않을 수 있다는 프랑스 정부 담당자의 이야기가 나왔겠는가. 지난 11월 초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현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무슨 일로 나왔냐고 물으니 미국에 있...
올 섣달은 무척 추운 편이다. 한강이 일찍 얼기로는 71년 만이란다. 게다가 눈까지 많이 내린다. 하얀 눈송이가 하염없이 흩날릴 때는 한순간 꿈속에 잠기기도 한다. 메마른 세상살이 잠시 잊고 포근한 행복을 맛본다. 밤새 추위에 저 눈이 얼면 빙판길의 애로며, 한데서 일하는 분들의 아픔은 더할 수 있다. 무정물인 백설의 양면성이다. 밤하늘 그토록 아름답게 빛나며 사라지는 별똥별도 가까이하면 비수가 되어 꽂히는 운석파편인 거와 다름없다. 아름다운 것은 그대로 둘 때 빛이 난다. 길거리 맹추위 속에 누군가 일당벌이로 나눠주는 전단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3월의 시식(時食)으로 기록돼 있지만, 과거 인천의 미식가이시자 ‘우리 맛’ 탐구에 저명하신 고 신태범(愼兌範) 박사의 저서 「먹는 재미 사는 재미」 에는 12월 어류로 분류돼 있다. 인천 근해에서는 이 무렵부터 복어가 많이 났기 때문에 그리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신 박사께서는 이 책에서 "호식(好食)의 요결(要訣)은 그 고장의 토산(土産)이 한창 흔하게 나도는 제철에 먹어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복어 요리에 대한 아주 구수하고도 맛깔스러운 내용의 글을 남기셨다. "요즘 대중식사로 잔 복으로 끓인 매...
지난번 칼럼에서 ‘관광의 사회·문화적인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관광이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이어서 관광이 사회·문화적인 측면의 부정적인 영향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 번째 얘기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관광객의 관광 활동은 육체만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사회적인 배경(Background)과 문화적인 배경과 같은 관광객의 정신적인 측면도 관광지의 주민과 교류하게 된다. 따라서 관광객과 지역주민 간에는 직·간접적인 접촉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관광지역에 사회...
1874년, 그러니까 고종 11년 6월 20일자 실록에는 ‘인천부에서 큰 거북이를 바치다’라는 기록이 있다. 인천부(仁川府)에서 아주 큰 바다 거북이 한 마리를 잡아 고종 임금께 바친 모양인데, 그 내용이 고종과 도제조(都提調) 이유원(李裕元)의 대화 속에 나온다. 고종과 이유원의 대화는 이유원이 고종께 원자궁(元子宮)의 기후(氣候)를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에 대해 고종은 원자가 5월부터 수두(水痘)를 앓았는데 지금은 다 나았다는 대답을 한다. 이에 이유원이 날짜를 택일하여 각전(各殿)과 각궁(各宮)에 원자의 쾌차를 알리는...
지난 11월 2일자 조선일보에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 선정’ 기사가 실렸다. 조선일보와 행정안전부, 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가 공동 주최한 ‘2017년 제19회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大賞) 공모’에서 경부고속도로 죽암휴게소(서울 방향) 화장실이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내용이다. 죽암휴게소 화장실은 다양한 LED 조명을 설치해 밝고 선명하며, 연두색과 노란색으로 꾸민 내부 벽면은 화려한 조명과 어우러져 카페 분위기를 자아내는 등의 뛰어난 인테리어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기능면에서도 세면대에서 사용한 물을 끌어 소변을 씻어 내리...
지진으로 포항은 참 아프다. 요즈음 태극기도 아프다. 태극기 달기 모범단지였던 우리 아파트도 그전 같지 않다. 작년 촛불집회 정국 이래 오늘날까지 그리 보인다. 태극기가 무슨 죄인가. 1919년 3·1 만세운동 때는 전국의 태극기 물결이 항일의 상징이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태극기 물결이 국민 융합과 국가 창성의 상징이었다. 거리마다 경기장마다 ‘…태극기 휘날리면서…’라는 응원 가사와 함께 태극깃발과 태극문양이 넘쳐났다. 그런데 근년 촛불집회는 말하자면 진보세력이 중심이었고, 태극기집회는 보수세력이 중심이었다. 시방 태극...
"인천부사회사업협회(仁川府社會事業協會)에서는 부내 일본 내지인 각 가정에서 고용하는 하녀가 근일 격증함에 감하야 하녀학교라는 색다른 사업을 하게 되어 오는 8월 10일부터 개교하야 10월 9일까지 2개월 간에 국어, 산술은 물론 일본 내지인의 예의범절까지 가르쳐 졸업 후에는 직업까지 구해주기로 한다는데 학교는 부내 화정(花町) 인보관(隣保館)이며 자격은 13세부터 30세까지의 조선 부녀자로 일본 내지인 가정의 하녀를 지망하는 사람에 한한다고 한다." 1937년 8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 내용이다. 하녀학교(下女學校)라는 해괴한...
동인천역은 인천의 교통과 문화, 모든 것의 중심지였다. 축현역(1899년)-상인천역(1926년)- 다시 축현역(1948년)- 동인천역(1955년)으로 이어지며, 광장의 역할로 각종 궐기대회나 대규모 집회의 상징적 장소였다. 그런 연유로 인천사람들에게는 한편의 사진과 같은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전철 개통 전까지는 동인천역에서 통학하는 대학생, 기다리고 만나고 헤어지고, 모든 추억과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사람도 없고 활기도 못하다. 현재 동인천역을 기준으로 경인선 철로 남쪽은 인천 중구, 철로 ...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돌아간 올해의 노벨문학상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일본 문학의 저력을 확인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저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선진국이라고 치부하기에는 3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문화적 수준이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정권이나 국가 권력이 함부로 문학과 예술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그 간섭이 자칫 예술의 숨통을 조이고 문화의 생명력을 경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1996년에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
1924년 10월 30일자 동아일보에 흥미로운 통계가 하나 나와 있다. ‘仁川府 車輛數’라는, 당시 인천부 전체 차량 대수를 차종별, 소유인별로 분류해 통계를 낸 내용이다. ‘흥미로운 통계’라고 말한 것은 오늘날 일반적 차량 개념에는 이미 사라져 버린 ‘기억 속의 운반구(運搬具)’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인력거(人力車), 우마차(牛馬車) 따위가 통계 수치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1924년이라면 사실 지금으로부터 근 한 세기에 가까운 93년이나 격한 시절이니, 인력거나 우마차가 운송 수단으로 차량 통계에 잡혀 있는 것...
논자는 지난 번 칼럼에서 ‘관광과 경제’라는 제목으로 관광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긍정적·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관광이 사회·문화적인 측면의 영향관계를 언급하고자 한다. 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관광 활동은 인간의 거주·이전의 자유와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로 인식되는 것이기 때문에 관광산업은 계속 발전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관광 활동으로 인한 관광지의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의 변화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광객의 관광 활동은 육체만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살고 있는 ...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올 한가위 귀성길. 초가을의 빛 고운 산하를 지나갈 때 완상할 무궁화 꽃단지를 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나라꽃 무궁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나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이라는 애국가나 동요 구절이 무색하다. 너무 흔히 듣고 불러온 꽃이기 때문일까. 어디에나 있는 것 같지만, 실제 무궁화는 애국가의 영상에 나오는 모습처럼 그리 흔하지 않다.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만 해도 일부러 찾아봐야만 학교나 아파트단지 울타리 언저리에서 볼 수 있을 정도다. 이 시대에 복원된 창경궁에...
모처럼 열흘이 넘는 긴 연휴를 보내는 마음이 한편으로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편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못내 찜찜한 것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과 여건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우선 외국에서 심지어 평창 동계올림픽에 자국 선수단을 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한반도의 안보 위기가 심각하다. 특히 우려되는 것이 북핵 위기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미국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어느 때보다 예측이 어려운 인물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돈키호테식 언동은 이미 잘 알려져 있...
"제녕학교 뒤에 설립된 민간학교는 인명의숙이다. 이 학교의 설립자는 저 일진회(一進會)와 투쟁한 자강회 인천지회장이며, 박영효를 암살하려다가 ‘사상팔변가(思想八變歌)’란 시를 남기고 자결한 정재홍 씨이다." 이 글은 고 고일(高逸) 선생의 「인천석금」 중 ‘인명의숙(仁明義塾) 설립자 지사 정재홍 씨’ 편의 서두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이렇다. 제녕학교(濟寧學校)는 1903년 서상빈(徐相彬)이 후진 양성을 위해 설립한 인천의 사립학교다. 이 학교에 이어 인명의숙이 설립되는데 설립자가 대한자강회인천지회장 정재홍(鄭在洪 ?...
지난 9월 9~10일 1박 2일간 비무장지대(DMZ)를 다녀왔다. 통일민주협의회 주최로 ‘남북 사회문화 통합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의 토론회와 DMZ 견학을 겸한 행사였다. 90여 명이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아침 일찍 출발해 문산 임진각을 거쳐 DMZ로 들어갔는데 들어갈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통일대교 입구 검문소에서 일일이 탑승자의 신분을 확인했는데, 미리 신고된 사람이 아니면 통과되지 않았고, 당일 신분증을 갖고 오지 않은 경우 들어갈 수 없었다. 우리가 탄 버스도 신분증을 가져오지 못한 일행이 있어 세 번이나 임진각 ...
북한 풍계리 만갑산은 아파도 이만저만 아픈 게 아니다. 김정은의 6차 핵실험, 무심한 절기 백로는 어느새 코앞을 스쳐갔다. 이슬지는 초가을, 짙푸른 밤 향기를 뿜어대던 야향목도 성장을 멈췄다. 추분이 멀지 않다.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입산"이라는 졸작 단시조 한 수로 이 철을 맞아 동행한다. 어허 저기 저 한 사람 산속으로 들어서네 ∥ 숲길 따라 가다말고 사라지고 없네그려 ∥ 산 빛에 / 다 녹아설랑 / 그만 산이 돼 버렸네. 본인의 문학석사 학위논문 ‘산강 시조의 제유적 세계인식과 낙원사상 연구’에 실린 작품이다. 사람...
"3일 토요일 맑음. 평소처럼 YMCA에 출근했다. 오후 5시 5분에 기차를 타고 인천에 갔다. 동석기(董錫基) 목사가 역으로 마중 나와서 나를 자택으로 데리고 갔다. 동석기 목사의 깔끔한 목사관, 매력적인 아내 때문에 기분이 좋았고, 조선식 음식만 제외하면 마치 미국인 가정에 초대받은 것 같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서상수(徐相壽)의 아들인 서병의(徐丙儀)를 만났다. 서병의는 아주 멋진 청년으로 성장했다." "4일 일요일 맑음. 오전 11시에 동석기 씨의 교회에서 마태복음 14장에서 17장까지의 구절에 대해 신도들에게 ...
달걀이 문제다. 아니, 정확히는 달걀에서만 문제를 삼았을 뿐이다. 다른 먹거리에서도 줄줄이 나올 수 있는 문제이기에 정확히 짚고 해결해야 한다. 겨울마다 구제역으로 많은 돼지의 살처분이 이어졌고, 그것을 수습하다 공무원이 과로사하고, 겨울이 되면 구제역에 농가 간 이동을 금지시켰고, 지나가는 자동차마다 소독을 했다. 매년 반복되는 과정에서 올해는 닭으로 옮겨간 것뿐이다. 올 초부터 조류인플루엔자(AI)로 달걀 한 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수입 달걀이 식탁에 등장했다. 달걀을 항공기로 가져올까 배로 가...
손기정기념관에 이길용(李吉用)기자의 흉상이 세워진다는 동아일보 기사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아, 이길용 선생!’하며 눈을 감았다. 그것은 지난 9일자 보도였다. 기사에는 ‘한국인 일깨운 두 영웅 81년 만의 해후’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손기정 선생과 이길용 기자에 관한 기사였다. 손기정(孫基禎)선생은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역대 올림픽에서 동양인 최초의 우승이었고,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로 올림픽신기록이었다. 한국이 낳은 마라톤 영웅의 쾌거였다. 일장기를 가슴에 단 손 선생의 우승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