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훈 기호일보 회장이 향년 87세로 별세한 가운데 12일 시흥시 시화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이 조의를 표한다. 전광현 기자 jkh16@kihoilbo.co.kr

인천·경기지역 언론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지역 언론계 거목, 서강훈 기호일보 회장이 12일 영면(永眠)에 들었다. 향년 87세.

고인은 1937년 6월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태어나 1958년 인천교육대학 전신인 인천사범학교 본과를 졸업하고 잠시 교직에 몸담은 뒤 1964년 건국대 법정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졸업과 함께 1964년 기자에 입문해 사회부장을 거쳐 1971년 편집국 부국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2년 뒤인 1973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1도 1사 원칙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경인지역 언론 3사가 통폐합되면서 해직됐다.

고인은 통폐합 조치에 맞서면서도 언론이 사라진 인천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낼 방안으로 1975년 10월 10일 해직 언론인들을 모아 ‘경기교육신보’를 창간한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따가운 시선에도 교육관계 특수주간지를 앞세워 인천 유일 언론사로 끊어졌던 인천 언론의 공백기를 이어 온 투사다운 면모도 보여 줬다.

1987년 6·29 선언으로 언론자율화가 시행된 이후 1988년 7월 20일 지금의 ‘기호일보’를 창간해 ‘경인지역의 아침을 여는 정론지’로 일궜으며 영면에 들 때까지 이끌어 왔다.

국내 언론계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기자 출신 사주(社主)로 60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고인은 2002년 서울언론인클럽의 ‘제18회 향토언론인상’ 수상에 이어 이듬해인 2003년에는 ‘세계자유민주연맹’으로부터 ‘세계 자유장’을 받았다. 서울언론인클럽의 향토언론인상은 이제껏 인천에서 고인을 비롯해 단 3명만 받았을 정도다.

영면하는 순간까지 날로 침체하는 지역언론의 앞날을 걱정하면서도 언론과 기자 역할을 늘 강조해 온 뼛속까지 기자 그 자체였다.

고인은 영면했어도 세상을 향해 기자의 자세를 일갈했던 당부가 여전히 귓전을 울린다.

"기호일보는 사회 약자를 대변하고 건강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며 공공의 이익과 상생을 지향하는 언론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존재 이유를 실천하는 길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러한 소명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길 당부합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춘자 여사와 아들 서승인·민수, 딸 향희, 자부 정현자, 사위 김경일 등이 있다.

고인의 장례는 ‘기호일보 회사장(葬)’으로 엄수한다. 빈소는 시흥시 시화병원 장례식장 2층 VIP 2호실이며, 발인은 14일 오전 5시, 장지는 안산시 대부도 선산이다.

한동식 기자 dsha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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