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니트족(NEET: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ning+族)’이란 말을 아십니까?"

 니트족은 ‘직업도 없고, 직업을 구할 생각도 없고, 취직을 위해 교육도 받지 않는 15∼34세 사이의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사실 이 단어는 최근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1990년대 말 버블경제가 무너진 일본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2004년 신어 보고서’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에서만 이미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회 곳곳에 니트족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원인 분석조차 없던 기성세대에 의해 단순히 ‘나약하고, 무능한’ 존재로 규정돼 버렸다.

 그러나 청년들이 구직활동을 포기하게 된 이유는 다양하다.

 본보는 청년들이 니트족이 된 원인을 분석했다. <편집자 주>

무업청년들을 위한 민간단체 ‘니트컴퍼니’가 ‘카카오 프로젝트100’과 함께 니트족을 위한 커뮤니티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은 ‘무업 청년들을 위한 회사놀이’ 다섯 번째 시즌을 마치며 연 전시회 모습. 사진=박지혜 기자 pjh@kihoilbo.co.kr
무업청년들을 위한 민간단체 ‘니트컴퍼니’가 ‘카카오 프로젝트100’과 함께 니트족을 위한 커뮤니티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은 ‘무업 청년들을 위한 회사놀이’ 다섯 번째 시즌을 마치며 연 전시회 모습. 사진=박지혜 기자 pjh@kihoilbo.co.kr

# 증가하는 니트족

올 초까지 서울의 한 악기대리점에서 웹페이지를 관리했던 김찬영(28·인천시)씨는 최근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 힘겨워하고 있다. 2019년 말부터 근무를 시작한 직장에서 지난해 초 갑작스럽게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로 인원 감축을 결정함에 따라 일자리를 잃은 뒤 별다른 일자리를 찾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씨는 20대 초반부터 꿈꿔 온 판타지소설 작가를 준비 중이지만, 일자리를 찾지 않고 있는 상황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는 작가가 되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웹사이트에 판타지소설을 연재하면서 일간 순위 1위에 오르거나 주간 순위 17위를 기록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음에도 ‘애들이나 좋아하는 유치한 판타지소설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질타가 계속되자 펜을 내려놨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자신의 꿈을 실현할 계획이다.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펜을 들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취업이 잘 된다는 ‘컴퓨터과학’ 학사학위를 수료하고 코딩 공부도 병행하는 등 근면성실하게 생활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백수, 즉 ‘니트(NEET)’로 불리고 있다.

김 씨와 같은 국내 니트족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급증하는 모습이다.

지난 3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국내 니트족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청년인구 중 니트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18.4%(170만여 명)로, OECD 평균 13.4%보다 상회한다.

2016년 26만여 명까지 하락했던 니트족 규모는 지난해 43만6천여 명까지 증가했다. 이는 전년도 대비 24.2%(8만5천여 명) 증가한 수준으로, 전체 청년층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2.8%에서 4.9%로 상승했다.

특히 전문대졸 이상의 니트족은 2016년 9만여 명에서 2020년 18만여 명으로 4년간 두 배 급증하며 전체 니트족의 41.3%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는 등 노동시장에서 고급 노동인력의 감소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 청년들은 왜 구직을 포기하게 됐나

우리나라는 근무시간을 규제하는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될 정도로 장시간 노동과 적은 급여 등 불안전한 노동환경에 빠져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OECD 통계와 통계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OECD 가입국 중 연간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덴마크·노르웨이·독일·네덜란드는 연간 평균 근로시간 1천396시간, 1인당 국민총소득 6만187달러인 반면 한국은 이들 국가보다 1.4배 더 일하고 소득은 3만2천115달러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니트족은 장시간 노동과 최저수준의 임금은 물론 근로기준법을 무시하고 개인의 희생과 고통 감수를 당연시하는 문화 등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비상식적 일자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평등하지 못한 수직적 관계 ▶하청과 재하청 및 파견 등 다양한 형태로 ‘사람을 갈아 넣는’ 비용 우선주의 등 부당한 일자리에 관한 구조적 문제에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구조를 한 번에 뒤바꿀 수 없는 청년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저항으로 구직을 포기한 채 노동 대신 쉼을 선택했지만 돌아오는 건 ‘나약하다’는 꼬리표와 벼랑으로 내몰리는 직장을 위해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뿐이다.

무업청년들을 위한 민간단체 '니트컴퍼니'에서 다섯번째 시즌을 마치며 진행한 전시회에 부당한 일자리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을 솔직하게 담은 팻말이 전시돼 있다.사진=박지혜 기자
무업청년들을 위한 민간단체 '니트컴퍼니'에서 다섯번째 시즌을 마치며 진행한 전시회에 부당한 일자리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을 솔직하게 담은 팻말이 전시돼 있다.사진=박지혜 기자

# 의지의 문제?

우리나라에서 니트족은 주로 ‘의지의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니트족을 정의하는 명확한 기준과 개념은 정립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 ▶의지박약 ▶나약한 ▶끈기가 없는 ▶힘든 일은 꺼리는 등의 개인의 문제로 귀결하는 편견이 작용한다.

한 기업의 임원진으로 재직 중인 A(62)씨는 "결국 힘든 일은 하기 싫어 백수 상태로 지내는 니트족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나 때는’이란 말을 꼰대스럽다고 하지만, 갖은 어려움에도 결국 끝까지 버텨 인생을 일군 우리 세대로서는 요즘 애들이 나약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요즘 애들’로 대표되는 니트족에 대한 기성세대의 시선은 삶을 소극적으로 대하며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그저 무기력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청년들은 니트족에 대한 기성세대의 편견에 대해 그들이 만들어 놓은 ‘불공정’하고 ‘과로가 일상화’된 문화에서 기인했다고 비판한다.

지난 1월부터 니트족이 된 차현정(28·여·안양시)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5년여간 대학 어학원 행정실과 웹 콘텐츠 회사 및 액세서리 가게 등 다양한 직장에서 근무했지만 단 한 번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거나 4대 보험에 가입해 보지 못했다. 심지어 급여가 3∼4개월씩 지급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당연한 일처럼 야근이 반복됐지만 수당은 받아 본 적조차 없었다.

한 회사에서는 입사 당일부터 모든 업무를 그에게 맡기는 등 점차 업무량과 강도를 늘렸고, 결국 밤낮 없이 일하던 차 씨에게 남은 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에 빠지는 ‘번아웃증후군’과 ‘과호흡 증상’뿐이었다.

죽음의 공포에 맞닥뜨린 뒤에야 자발적 니트를 선택한 그는 "노동에 대한 대가를 온전히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있지만, 어른들은 ‘우리 다 그렇게 살았어’라는 말로 할 말을 잃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니트족인 김가영(26·여·수원시)씨는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이 나이쯤 되면’이라는 적정 나이와 ‘이런 정도는 있어야지, 했어야지’라는 기준에 맞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은 게 되더라"며 "나이대별로 사회가 정해 놓은 틀에 맞춰 사는 게 노력과 행복의 척도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상 결국 특유의 사회분위기에 물들어 ‘나는 언제?’라는 불안감에 쫓기게 된다"고 호소했다.

# 시급한 지원책 마련

고용노동부는 ▶미취업 청년 긴급취업장려금 ▶청년내일채움공제 ▶청년 구직활동 수당 지원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 등 다양한 ‘청년고용노동정책’을 시행 중이지만 니트족을 위한 지원 정책은 전무하다.

경기도를 비롯해 도내 각 시·군 역시 청년들의 구직활동을 위한 여러 사업들을 펼치고 있지만 니트족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빠져 있는 등 공공기관 차원의 지원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정부조차 니트족에 대한 현황 파악조차 실시하지 않을 만큼 여전히 주류사회에서 니트족이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 ‘포용’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에서야 ‘제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2021~2025)’을 수립, 청년정책에 사각지대가 없도록 다양한 지원 방법 강구에 나선 상태다. 특히 올해부터는 ‘한국형 NEET 지표’를 개발해 청년들의 구직 포기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하고 고용복지서비스망 구축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서비스 제공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지원 시도가 눈길을 끈다. 최근 카카오 프로젝트100과 함께 ‘무업 청년들을 위한 회사놀이’ 다섯 번째 시즌을 마친 ‘니트컴퍼니’는 니트족들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미취업 상태 청년들이 사회와의 교류를 이어나갈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고 교류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전문가들은 "니트족과 같이 육체적·심리적으로 소진된 상태의 사람들에겐 온전한 이해와 이들을 세심하게 바라보고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건네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정부는 물론 자치단체에서도 지원책을 시급히 마련해야만 니트족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청년문제 해결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표 기자 sp4356@kihoilbo.co.kr

박지혜 기자 pj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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