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뮬리가 몽환적인 핑크 톤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유를 살짝 섞은 듯한 자주와 분홍색의 배합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사랑스러운 색감을 보여준다. 핑크뮬리 인공 재배 단지는 인기 장소가 되어 나들이객의 발길을 유혹한다. 하늘공원의 억새 군락지에 조성된 핑크뮬리가 고혹적으로 예뻤다. 가을 대표 풍광으로 단풍과 억새를 꼽는데 핑크뮬리의 인기에 밀리는 쪽이 억새인 것 같다. 핑크뮬리는 가을 산야의 주인공으로 억새가 누려왔던 난공불락의 자리를 단숨에 넘보는 외래종이다. 생태계 파괴와 혼란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은 어떤 ...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고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재산 전부라 할 수 있는 56억 홍콩달러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한 말이다. 56억 홍콩달러면 우리 돈으로 8천96억 원이라 한다. 천문학적 재산이라 어느 정도의 부를 가졌는지 소시민의 정서로는 감이 오지 않는 액수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가진 재산이 많을수록 명예도 권력도 누릴 수 있기에 부자가 되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그는 재산뿐만이 아니라 하는 일에도 대중의 인지도에서도 성공...
산자락에 낮게 깔린 안개가 조금씩 피어오르며 퍼진다. 눈앞에 늘어선 무덤들이 안개의 옷자락을 들치며 언뜻언뜻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10월의 시작 날 아침이다. 챙길 것 많은 아침의 분주함을 밀쳐 두고 아버님 산소로 달려왔다. 용인에 있는 공원묘지에 누워 아버님은 무슨 생각에 잠겨 계실까? 갑자기 저 혼자 찾아 뵈어 놀라셨죠? 얘가 추석 연휴에 오고 또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나 하실 테지요. 생각이 많아서 왔어요. 이제 남은 달력은 달랑 두 장뿐인데 이 해가 가기 전에 불편한 제 마음을 털고 정리를 하고 싶어서요. 아버님은 ...
남자가 커피를 내려왔다. 커피 마니아는 나에게 사치라 고급향이 어떤 것인지 섬세하게 분간이 가지 않지만 혀끝에 감기는 부드러운 맛이 괜찮았다. 남자는 커피를 리필해 주면서 상당한 품위를 가진 커피 애호가라고 뜬금없이 칭찬을 해서 당황스러웠다. 남자가 내려온 커피가 코피 루왁(Kopi Luwak)이라 한다. 사향고양이 똥에서 골라낸 커피콩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 돈을 내고 커피전문점에서 마셔 본 적은 없다. 귀해서 비싼지 희소성으로 호사가들이 찾는 것인지 한 잔에 10만 원까지 한다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일전에 커피...
비엔나 벨베데레궁전의 미술관에서 구스타프 클림튼의 ‘키스’ 그림을 보러갔다. 유독 관람객이 많이 몰려있는 그림이다. 작품은 몽환적인 분위기로 에로틱했고 실제로 금가루를 사용해서 화려했다.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키스하는 연인의 행복이 황홀함을 넘어 슬픈 비가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묘한 아픔이 가슴을 관통했다. 클림튼은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았었고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졌다가 ‘사랑’이란 작품을 그리면서 재기했다. 제목처럼 사랑은 단순히 행복뿐이 아님을 보여준다...
111년 만의 최악 무더위, 40일 최장 기록 폭염특보가 해제된 지 하루 만에 다시 폭염주의보 발령. 폭염의 역사를 날마다 경신하고 있는 올 여름이다. 최고 기온이 35도 이상인 날이 2일 이상 지속될 때 발령되는 폭염특보가 올 여름에는 일상이 됐다. 이상고온은 지구온난화가 가져온 기후재해로 인간이 만든 대재앙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지구온난화의 여러 원인들 중에서 초록의 자연을 뭉개고 없애 버린 대가도 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알려진 대구는 가마솥처럼 달궈지는 분지 형태라 아프리카만큼 덥다고 대프리카라고 불리...
소비자단체에서 주최하고 인천시가 주관한 고령 소비자 강사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교육을 이수하고 나니 맹렬한 폭염을 참고 들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령 소비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고 다가올 우리의 현실적 미래이기도 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일반적으로 65세 이상을 고령 소비자라 칭하는데 65세에서 74세까지를 중고령 소비자, 75세 이상을 고령 소비자로 분류한다. 어르신들 대다수가 모바일이나 인터넷에 익숙하지 못해 정보에 취약하고 몸이 쇠약해지면서 마음도 약해지는 상황이 되면 소비자로서 누리는...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얻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창작한 마르셀 프루스트가 한 말이다. 특별히 이번 여행에서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던 대작가의 말이다. 여행은 설렘을 주고 마음을 힐링하게 하고 새로운 경관에 취해 행복을 주지만 여행지에서 보고 만나는 풍경과 사람을 보면서 깨달음의 자각을 얻어가는 시간이 있어서 소중한 것 같다. 11시간이 넘는 하루의 반을 소비한 긴 비행 후에 도착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다. 여행객을 태운 전세버스가 잠시 멈춰 설 곳을 찾던 중에 앰뷸런...
장미꽃이 만개한 계절이다. 주택가 담장에 피어 있는 장미가 탐스럽고 아름다워 가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잘 가꾼 장미꽃의 고혹적인 자태와 코끝을 간질이는 꽃향기가 기분 좋아 집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근래에 목격한 실화다. 한낮 밝은 햇살 아래 붉은 장미꽃이 만개한 주택의 담장에 감탄을 하며 걷고 있는데 앞서가던 고운 자태의 여인이 담장에 다가가 장미꽃 향기를 맡고 있었다. 저이도 감성 충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나쳐 가다가 뒤돌아봤다. 그이가 천으로 만든 가방에서 가위를 꺼내 장미꽃 송이를 자르고 있었다....
반세기 이상을 대립으로 긴장 상태였던 남북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평화를 갈망해온 지라 기대가 우려로 하강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몸담고 있는 단체에서 연변을 방문한 일이 요즘 의미 있게 되새겨진다.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 D 카운터 앞. 장춘으로 떠나는 남방항공에 탑승할 준비를 하며 짐을 부치고 로밍도 하고 환전도 하면서 담소를 나눴다. 탑승장으로 가는 길에 퍼레이드 중인 어가 행렬을 만나 감히 왕비님과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도 누렸다. 다음 날, 백두산 탐방을 떠났다. ‘장백산’이라 새겨 놓은 바위를 마주한 순간...
타인의 삶을 넘겨다보면 그 속에 내 모습이 겹쳐 있어 놀라게 된다. 그래서 낯선 풍경 속에 나를 내려놓고 내면의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순수의 일탈이 필요한 것 같다. 미얀마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느리고 한적한 미얀마의 첫날 아침 풍경은 정갈하고 평화로웠다. 맑고 청명한 하늘과 깨끗한 호수와 주변 온통 푸른 숲이 어우러져 파라다이스에 온 것 같았다. 아침 햇살에 환해진 맑은 대기가 내 마음속 얼룩까지 말갛게 헹궈 상쾌했다. 치열하고 각박했던 일상이, 맞물려 빈틈없이 돌아가야 안심하는 하루하루가 가볍게 날아 공중에서 흩어...
얼마 전에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다는 기사를 봤다. 재미있고 황당한 대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멍 때리기가 현대인에게는 힐링의 방법이라고 한다. 마음 급할 것 없이 느리게 사는데도 스트레스는 쌓이고 관계 맺음으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다 보면 고요하게 있을 시간이 부족하기는 한 것 같다. 세상 사람들과 교류 중인 시간은 제하고 나면 혼자 쉬는 시간이 있는데도 스마트폰 앱으로 온갖 잡다한 정보를 찾거나 TV를 시청하면서 감정 소모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멍 때리기는 뇌를 쉬게 해 주는 휴식의 시간이다. 멍 때리기 치유력이란 글을 ...
주말에 세월호 4주기 추모행사가 전국에서 있었다. 세월호에 탑승한 476명 중 실종자 9명을 포함해 304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대다수는 수학여행 중인 단원고 학생이다. 선장은 배와 승객을 버리고 탈출했고 구조가 진행되는 과정도 납득하기가 어려워 국민의 공분을 산 대형 사고로 기억되고 있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했다. 재난 발생을 막기 위한 예방과 대비책을 세우고 사고 발생 시 신속한 대응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정부의 약속과 다짐을 들었다. 국민은 유사시에 ...
무기력해지고 매사 의욕이 없어서 병원 진료를 받았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만성피로가 온 것이라며 수면장애에 도움이 되는 생활 습관 들이기를 권하면서 약을 처방해 줬다. 처방해 준 약 중에서 면역제나 영양제는 챙겨 먹는데 수면제는 심적으로 거부감이 왔다.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면 약 기운에 조종당해 약에 중독돼 갈 것 같은 의구심이 들어서다. 몇 해 전부터 수면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는 친구를 봐온 터라 수면제에 의존하는 친구의 모습에 거부감이 생겨서다. 친구는 나에게도 수면제를 권하곤 했다. 걱정 가득해 머릿속 복잡하고 몸 피...
발칸반도를 여행하는 중에 한국 여성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투숙한 호텔에서 조식을 먹는데 테이블에 합석한 한국관광객이 어제 여행코스였던 크로아티아의 폴리츠비체에서 50대 한국여성이 실족사했다고 한다. 환승 시간까지 포함하면 17시간이 넘는 비행거리를 날아가 먼 이국땅에서 듣게 된 죽음이 가슴에 턱 얹혔다. 다음 날 우리가 가 볼 장소인지라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진 것도 있었다. 폴리츠비체 국립공원은 웅장한 산세와 수량 풍부한 급류가 흐르고 푸른빛 선명한 호수와 폭포가 장관을 이룬 곳인데 호수나 물길 위를 건너는 나무다리에 난간이...
사람과의 친숙을 보여주는 거리 매김은 애매해서 때로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말한 외롭지 않고 상처 입지 않을 거리를 참고해 볼 만하다. 그러나 일상에서 정확한 거리두기를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느 시점에 너무 멀어졌는지 혹은 너무 가까워졌는지 이상 신호를 느끼기 전까지는 거리두기가 자동 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과 나 사이에는 20cm 거리가, 친구와 나 사이는 46cm가 적정거리이고, 직장동료와 단체모임에서는 팔을 뻗어 닿지 않는 120cm가 정당한 거리두기라고 한다. 지인의...
용도가 없어서 평소에 쓰지 않는 보자기를 명절이면 가끔 볼 수 있다. 격을 높여야 하는 선물을 포장할 때 싸는 용도다. 선물 포장용으로 사용하는 보자기는 주로 황금색이라 금빛이다. 부귀를 상징하는 금빛이 받는 이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선물을 받으면 화학섬유로 만들어진 포장용 금색 보자기는 물자 풍부한 세상이라 대체로 버려진다. 설 명절 준비로 재래시장에 들렀다. 초로의 아주머니와 아들이 예쁜 조각보를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아들은 장애가 있어 보였다. 조각보를 스카프마냥 머리에 곱게 쓰고 손님을 불렀...
전 국민이 여행을 떠나는 세상이라 여행은 우리 삶에 일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해외여행은 패키지가 주류다. 하지만 명승지를 찾아가 발자국 찍은 인증 샷을 남기는 여행보다는 소소한 즐거움으로 느리게 걷는 여행이 사람들 버킷리스트가 되고 있다. 시간이 부족해서, 한정된 여행경비로 최대한 많은 장소를 섭렵해야 해서, 짧은 시간 안에 분주하게 여행지를 거쳐 간다. "핫해지기 싫어요." 유명한 곳 되기 거부를 선언한 업장 이야기를 접하면 셰프나 주인이 궁금해진다. 언젠가 ‘미슐랭 가이드’에 별 셋을 받은 식당으로 선정된 오너 셰프...
"온 몸에 냉기가 퍼지는 느낌이에요." 외로움의 심적 고통이 짧은 말 속에 담겨 있다. 영국에 외로움담당 장관이 새로 생겼다고 한다. 외로움을 질병으로 보고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조치로 국가가 나서서 해결을 이끌어간다는 위민정책이다. 노동당 의원이 발의한 것을 집권 여당인 보수당이 초당적으로 추진했다고 한다. 국민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를 우선으로 고려하는 여야 정당의 정책 실행이 멋져 보였다. 1인가구는 이제 우리나라 대표 가구유형이 됐다. 1990년에 9%에 불가했던 1인가구가 2010년에는 23.9%로 급속하게 증가...
후미진 골목 두 번 꺾어들면/허름한 돈암 곱창집/지글대며 볶아지던 곱창에/넌 소주잔 기울이고/난 웃어주고/가끔 그렇게 안부를 묻던 우리. 올해 기억 속에/너와 만남이 있었는지/말로는 잊지 않았다 하면서도/우린 잊고 있었나 보다/나라님도 어렵다는 살림살이/너무 힘겨워 잊었나 보다. 12월 허리에 서서/무심했던 내가/무심했던 너를/손짓하며 부른다. 둘이서/지폐 한 장이면 족한/그 집에서 일 년 치 만남을/단번에 하자고. 목필균 시인의 시 ‘송년회’ 전문이다. 송구(送舊)의 풍경이 예전에 비해 차분해지기는 했지만 한 해를 보내는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