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고가 1건 발생하기 전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 29건과 소소한 징후 300건이 존재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란 것이 있다. 이를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적용하면 발병 원인에서부터 사망자 통계, 미국과 갈등 속에 중국 당국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불투명성은 어쩌면 작은 사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이대로 간다면 일대일로(一帶一路) 같은 부드러운 표현을 사용하면서 패권국의 야망을 담은 중국몽(中國夢)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우선 세계 각국이 중국 내의 생산라인을 자국으로 회귀시
미국에서 발생한 플로이드 살해 사건과 이를 계기로 일어난 항의 시위, 31주년을 맞은 6·4천안문 사태와 소위 ‘홍콩 국가보안법(홍공보안법)’의 전인대 통과를 둘러싼 시위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몹시 착잡하다. 시위는 의도하지 않게 일부 파괴와 폭력성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세계의 양대국(兩大國) 지도자란 인물들이 이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시답지 않다는 말이다. 백악관 로즈가든에 선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싸잡아 테러집단으로 몰아붙였다. 자신은 법과 질서 수호자로서 나약한 주지사들을 대신해 연방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 보고서는 리처드 닉슨(37대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44대 대통령)까지 공화당·민주당 출신 정당에 관계없이 이어진 미·중 협력 기조가 공식적으로 끝났음을 밝히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원맨 쇼’가 아니라 미국 집권 세력이 굴기하는 중국을 냉전시대 ‘죽(竹)의 장막’ 안으로 되돌아 봉인하겠다는 기세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중국 봉쇄 기조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렇게 되면 가장 시달릴 나라는 당연히 양 세력권에 끼인 한국이 될 것이다. 미국과 안보동맹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중국과 일본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 중국은 발병 원인에서부터 사망자 통계에 이르기까지 불투명한 처리가 그 이유고, 일본은 어떻게든 하계올림픽 개최를 해보려다가 무리수를 거듭해 늪에 빠졌다. 이대로라면 중국은 화평굴기(和平屈起) 같은 부드러운 단어로 표현했을 뿐 패권주의 야망을 숨긴 적이 없는 만큼 추락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일본 역시 세계 웅비를 꿈꾸던 아베의 몰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살균제를 몸 안에 주사하거나 폐에 들어가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말한 트럼프 대통
코로나19를 둘러싼 인포데믹(거짓·허위 정보가 전염병처럼 빠른 속도로 퍼지는 현상)이 점입가경이다. 이런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평범한 시민이나 호사가들이 아니라 국가 지도자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클로로퀸’을 기적의 약품이라고 홍보하는데 앞장선 이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다. 이후 이 약품들은 미국 내에서 100배 이상 매출을 올렸다. 하버드 의대 임상수련병원에서 이들 약품이 ‘부정맥 위험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이 있다’고 밝히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더구나 코로나19 백신 개발 책임
총선에서 참패한 보수정치의 통합당은 여전히 다른 행성에 살고 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나라가 잘못 가는 걸 막지 못했다"며 사퇴한 황교안 대표, "국민의 선택에 절망했다"는 이석연 공관위원장 대행,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몇몇 낙선자들의 주장에 이르면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김세연 의원이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이고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고 말했던 까닭에 절로 수긍이 간다. 그들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마치 ‘국민이 멍청해!’라고 선거 결과를 단정한다. 마치 시험 망쳐 놓은 건 자기들인데 채점이
총선이 끝났고, 발목 잡던 야당은 지리멸렬, 여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전례 없는 대성공(?)을 거뒀다. 전체 의석의 3/5을 넘어서는 공룡정당이 탄생한 것이다. 이제 여당은 헌법 개정을 의결하는 것 말고 국회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 결과는 여당이 잘해서 만들어 준 걸까? 코로나19 재난으로 인한 초유의 국가적 위기 앞에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라고 힘을 보태준 걸까? 아니면 반대 외에는 대안이 없는 야당을 심판한 걸까? 그 답은 이번 선거를 지휘했던 이낙연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주제 사마라구의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는 투표소 광경으로 시작한다. 수도 지역 선거에서 백지 투표가 70% 쏟아지고, 법에 따라 재선거를 치르는데 백지 투표 비율은 83%로 더 올라간다. 당황한 정부는 계엄령 선포를 준비하고 비밀정보부는 ‘주민 다수를 전염시킨 도덕적 감염병’의 원인을 조사한다.백지 투표는 안 뽑겠다는 의미 이상으로 ‘뽑을 만한 인물이 없다’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만일 투표용지 끝머리에 ‘지지할 만한 인물이나 정당이 없음’이라는 항목이 있다면 바로 그곳에 기표했을 민심이다. 권력을 도둑질하
‘코로나 총선’이라지만 선거판은 끝내 안갯속이다. 투표일이 곧 닥칠 텐데 정책도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한쪽은 국난 극복이라는 명분에 묶여 있고, 다른 한쪽은 오로지 반대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선거가 선거다워야 한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문재인 정권의 지난 3년에 실정이 있었다면 반드시 심판해야 하고 앞으로 2년에 대해서도 설계를 내놓아야 한다. 심판이 야당 몫이라면 남은 2년의 설계는 여당 몫이어야 한다. 만일 지난 3년간 오로지 발목잡기에만 골똘했던 야당이라면 이번 기회에 당 해체 수준의 응징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심판도
"지금 기득권 거대 양방(兩幇)의 횡포가 극심해서 나라가 휘청이고 백성들의 원성이 뜨겁습니다. 일찍이 무현거사와 회찬도인이 외쳤던 ‘백성의 뜻이 온전하게 반영되는 전국무림총회의 꿈’은 요원합니다. 저희 상정방은 이 잘못된 구조를 깨뜨리고 무림 생태계의 다양성을 통해 대표성을 만들어 미래의 희망을 만들고자 애써 왔으나 지혜가 부족합니다. 공명 선생께서 일찍이 천하의 재편을 내려다보시던 그 혜안을 다시 한 번 발휘해 주십시오. 이웃 반도의 창생을 긍휼히 여겨주소서."공명 선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촛불이 거세게 일어
코로나19 위기에 세계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시험대에 올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1월 31일 중국인을 포함해 2주 이내에 중국에 체류했던 모든 외국인이 미국 입국을 막는 재빠른 조치를 강구하고 ‘계절마다 찾아오는 독감의 한 종류’로 크게 우려할 바 아니라고 큰소리쳤다. 그리고 "코로나19는 이미 철저하게 통제되고 관리하에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위기를 지적하는 야당과 언론의 비판은 ‘제2의 탄핵 시도’로 치부하면서 무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과 조처는 대중에게 경각심을 주고 방역 대책을
지난 9일 자정부터 한국과 일본이 서로 상대국 국민의 입국 규제를 강화하는 조처에 들어갔다. 코로나19 확산 차단이 명분이지만 사실상 외교적 상응 조처라는 성격이 짙다. 미증유의 감염병과 싸움이 한일 양국 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를 먼저 시작한 일본이 해결의 실타래를 풀 책임이 있음은 당연하다.아베 정부가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입국 규제 조처를 내놓았다기보다는 내부의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실시했기 때문이다. 정세균 총리가 "일본이 과연 우리만큼 코로나19 대응에서 투명하고 적극적인지 의심스럽다"고 했으나
여야 모두가 혁신을 내걸고 신진 인사 영입과 공천의 새바람을 운운하며 4월 총선의 기치를 내걸고 있다. 국민들은 ‘누가 누가 잘하나’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 명사출고도(名師出高徒)의 속담처럼 훌륭한 정치지도자 아래에서 빼어난 국회의원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요즘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의 주장이나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터럭을 불어서 숨겨진 흉터까지 모조리 들추어내는 ‘취모멱자(吹毛覓疵)’에 열을 쏟고 있다. 한마디로 ‘누가 누가 못하나’ 시합처럼 보인다. 위기와 갈등, 모략과 혐오, 어떻게든 상대를 끌어내림으로써 이익을 보
이제까지 유행했던 다른 바이러스보다 치사율이 낮다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어느 때보다 혐오 지수가 높고 두려움을 증폭시켜 ‘대응 리더십’의 교훈을 새삼 되새겨 보게 한다. 특히 한·중·일 삼국의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의 대처 과정을 보면서 민주주의와 진정한 국민 기본권 보장, 책임 있는 정치의식이 절실하다는 걸 거듭 확인하게 된다. 우리 정부는 이 사태에 매우 신속하게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공공병원 비율이 5% 남짓, 공공의료의 미비로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 매일 37명이 자살하는 나라에서 칭찬받을 만한 대처를 했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의 습격을 받고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금세 하늘에서 공포의 대마왕이 내려올 것만 같다. 일각에서는 하늘길을 봉쇄하고 사회 곳곳에 칸막이를 치자고 연일 침을 튀기고 있다. 중국 우한 발 코로나19가 불러온 이런 모습 뒤에 중국인 혐오와 괴담이 더해지고 있다. 일부 층에서 교묘히 이런 혐오를 부추긴다. 맞서는 올바른 소리가 없지도 않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역사를 들먹여 80년 전 만보산사건을 들먹이는 언론까지 있다. 이건 단순한 오보가 아니다. 1931년 7월 2일 ‘조선일보’ 장춘 주재원이
5년 전 WHO(세계보건기구)는 새로운 인간 감염 질병의 ‘이름짓기’ 원칙을 세웠다. 구체적으로 지리적 위치, 사람 이름, 동물·식품 종류, 문화, 주민·국민, 산업, 직업군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특정 지역과 종료, 민족공동체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우한폐렴’은 지리적 위치 규정에 반한다. WHO는 이 병명을 ‘2019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로 명명했다. 청와대가 이 권고에 따라 ‘신공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불렀다. 병명 정정에 대해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보수 성향의 누리꾼들
10년 전, 마나베 히사오는 12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재팬블루’라는 청바지 생산업체를 차렸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가 쇠퇴하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선택한 것이었다. 도시의 혁신으로 청바지 업체를 차린 까닭은 도시의 전통과 연관이 있었다. 100년 전인 1919년 청바지 생산이 연간 2천만 켤레를 정점으로 뒷걸음치다가 기존의 생산시설을 재빨리 학생복과 작업복 생산으로 돌려 성공했고 한때는 일본 전역의 학생복 70%를 공급할 정도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중고생 수효가 줄어들면서 그의 고향 도시에 몰려 있던
단성식이 쓴 「유양잡조」에 ‘타초경사(打草驚蛇)’의 고사가 나온다. 현령 지위의 왕로가 재물을 탐하고 법을 업신여겨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 축재했다. 어느 날 백성들이 현령에게 고발장을 냈는데 주부가 탐욕스러워 뇌물을 챙겼다는 내용이었다. 왕로는 깜짝 놀라 고발장의 결재란에 여덟 글자를 썼다. "여수타초오이경사(汝雖打草吾已驚蛇 : 너는 비록 풀을 건드렸지만 나는 이미 놀란 뱀이 되었다)." 이 말이 그 후 네 자로 숙어화된 것이 타초경사. 여러 경우에 갖가지 해석과 사례, 응용에 대한 얘기가 꽤 많은데 중국 귀주성의 ‘마오타이주(酒
탈냉전 흐름을 타던 국제정세가 이제 21세기형 신냉전으로 퇴화하고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일본·호주·인도를 축으로 하는 해양 동맹과 러시아·중국을 축으로 하는 대륙 동맹의 대립이 가시화된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격렬한 물밑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년 전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 활성화’를 제시한 이후 미국은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비롯해 탤리즈먼 세이버 훈련, 퍼시픽 림 등 다국적 합동군사훈련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고, 중·러는 이에 대응해 전략적 협력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2020년은 새로운 십 년대가 시작되는 해이자 백 년 단위로 헤아리면 ‘대한민국 시즌2’가 출발하는 해다. 그만큼 새 출발에 거는 기대와 의미가 남다르고 생각해볼 바가 많다. 지난해 내내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던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등이 해가 바뀌기 전에 국회를 통과했다. 두 법안 모두 지난 20∼30년을 넘긴 해묵은 과제였으나 번번이 기득권의 탐욕 앞에서 좌절되거나 왜곡되곤 했었다. 따라서 누군가에겐 ‘민주주의의 후퇴’로 인식되겠으나 적어도 우리 사회의 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