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청명한 봄 하늘을 보니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이 생각난다. 그리고 시의 구절처럼 그리운 얼굴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갖가지 사연과 추억을 함께 한 사람들. 그들을 생각할 때면 미소가 번지기도,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기도, 때로는 한쪽 가슴이 시리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그리워 할 사람이 있다는 말은 나 자신도 어떤 이에겐 추억할 얼굴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타인의 기억 속에 어떤 사람으로 각인돼 있을까? 이왕이면 기분 좋은 사람, 웃음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꼽으라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1597년 대중에게 선보인 이래 4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은 이 작품은 몬테규와 캐풀렛 가문의 갈등으로 희생된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전하고 있다. 한편,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스로 "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만큼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1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전쟁에 참전한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한다. 유명한 작품인 만큼 1932년과 1957년에 각각 영화화됐는데, 오늘은 록 허드
존 포드 감독과 배우 존 웨인은 서부영화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다. 이들이 함께 한 영화 ‘역마차’, ‘수색자’,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는 이 장르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존 포드는 서부영화 감독으로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적이 없다. 오히려 비서부극에서 감독의 면모를 인정받았다. 영화 ‘분노의 포도’ 역시 존 포드 감독의 비서부극으로 존 스타인백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 미국의 대공황기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이 영화는 사회와 인간이 맺는 관계에 대한 깊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진지한 작품이다.술에 취해 싸
우리는 매일 밤 꿈을 꾼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더러 기억난다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매번 그 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특별한 꿈도 있다. 태몽이나 돼지꿈이 대표적이다. 그런 꿈을 꾸면 앞일에 대한 기대가 생긴다. 반면 깨고 나면 찝찝한 꿈도 있다. 기분 나쁜 꿈을 생생하게 꾼 경우 우리는 최대한 그날 하루를 조심하려 애쓴다. 이렇듯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꿈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무의식의 영역인 꿈으로 연결된 남녀의 이야기를
새 학기로 문을 여는 3월의 풍경이 예년 같지 않다. 봄의 활기로 가득해야 할 학교와 거리는 아직 겨울잠을 자는 듯 황량하기만 하다. 쉽게 꺾이지 않는 코로나19의 기세에 전국의 유·초·중·고등학교는 유례없는 3주 개학 연기에 들어갔다. 코로나는 사회 풍경도 바꿔 모임과 집회 등 여러 사람과의 만남 자제 및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손 씻기와 기침예절과 같은 개인 위생관리를 철저히 지켜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연일 확진 환자가 가파르게 상승하다 보니 보이지 않는 공포가 주변에 만연하
영화나 드라마에서 착용한 옷이나 액세서리 등을 멋지게 소화해 대중들의 구매심리를 높이는 여배우를 일컬어 ‘완판녀’라 한다. 오드리 헵번은 영화 ‘사브리나’를 통해 완판녀를 넘어서 패션과 스타일의 불멸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다. 짙은 눈썹과 크고 동그란 눈을 강조한 메이크업과 ‘헵번 스타일’이라 불리는 단발 쇼트커트 헤어, 일명 사브리나 팬츠와 사브리나 플랫슈즈라 부르는 검정 바지와 굽 낮은 신발까지 그녀의 스타일은 6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시대를 초월한 아이콘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사브리나’가 영화사에 남긴 족적 중 하나
이름부터 슬픈 한 사람이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평생을 살아간 이 남성은 형을 대신해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울한 이름의 짐 위에 집안의 정신병력 또한 그에게 유독 강하게 유전됐다. 성인이 돼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고 싶었지만 시험에 낙방하며 좌절됐다. 이후 다소 늦은 나이에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만 27세에 화가가 되기로 한다. 그림에 전념한 8년간 무려 800여 점의 작품을 완성했지만 평생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 수 있었다. 동생의 헌신적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로 시작하는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시나무 새’는 오늘 소개하는 영화 ‘이브의 세 얼굴’을 잘 요약한 한 줄 평 같다. 이 영화는 다중인격장애로 널리 알려진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다룬 작품이다. 한 사람 안에 여러 인격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신기하면서도 기괴한 다중인격 현상은 실제 사례가 학계에 보고되기 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는 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의학박사인 지킬은 약물을 통해 인간의 두 가지 본성인 선과 악을 나누는 데 성공해 낮에는 학식 있고 점잖은 지킬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있다. 조용히 혼자 식사하는 것을 즐기는 한 사람과는 달리, 한데 어울려 여럿이 음식을 나누는 것을 선호하는 이가 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과는 대조적으로 대중음악이 듣기 편했다.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자는 사사건건 변화와 개혁에 가치를 두는 진보주의자와 부딪혔다. 그러나 취향과 이념이 판이한 두 사람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했다. 이는 2005년 즉위했지만 2013년 스스로 사임한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뒤이어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로, 영화 ‘두 교황’
결혼에 끝이 있다면 어디일까? 흔히 부부가 갈라서는 이혼을 결혼의 종말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는 영화 ‘결혼 이야기’는 이혼의 과정과 파경 후 자녀를 매개로 이어지는 관계까지도 결혼의 연장이라 보고 있다. 그래서 헤어짐을 다루는 이 영화의 제목은 ‘이혼 이야기’가 아닌 ‘결혼 이야기’다. 노아 바움벡 감독의 자전적인 스토리가 녹아 있는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이 추천한 2019년 최고의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보름 앞으로 다가온 2020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여우주연상의 막강한 수상작으로 거론될 만큼 높은
상상만으로 내가 속한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란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상상의 입구는 언제나 열려 있다. 거액의 로또에 당첨되는 꿈, 정말 갖고 싶었던 고가의 스포츠카를 사는 꿈, 어릴 적부터 꿈꿔 오던 장기 여행을 떠나는 꿈 등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상상이다. 복권 당첨은 내 맘대로 이룰 수 없는 일이지만 여행을 떠나거나 사고 싶었던 물건을 구입하는 것은 현실에서 가능하다. 단, 장기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으며, 스포츠카 구입 후 매달 갚아야 하는 카드 명세서를 보면 한숨이 깊어질 수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요./ 갱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 시인의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로 새해 인사를 드린다. 가식과 허울을 벗고 전원에서 즐기는 목가적 삶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이보다 더 훌륭히 표현한 시는 드물 것이다. 2020년에 소개하는 첫 영화 ‘콜드 워(Cold War)도 이 시와 같은 작품이다. 겉치레와 온갖 화려한 수식을 걷어낸 오롯한 알맹이의 감정으로 교감하는 작품이라 하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인물인 산타클로스는 풍성한 흰 수염에 붉은 옷을 입고 썰매를 끄는 순록 루돌프와 짝꿍이 돼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준다. 북극이 고향인 이 할아버지는 굴뚝을 타고 벽난로로 내려와 선물을 두고 간다. 그래서일까. 굴뚝이 없는 집에 살던 친구들은 산타 할아버지가 자신의 집에 오지 못할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지금도 전 세계의 많은 어린이들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굳게 믿고 있다. 어른들도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노력한다. 1947년 개봉한 영화 ‘34번가의 기적’은 성탄절의
관객들이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화제성과 색다른 이야기 및 볼거리, 유명 배우나 감독의 참여 등에 좌우된다. 2019년 2월 개봉한 영화 ‘알리타’는 일본에서 발표한 사이버펑크 만화를 영화로 각색한 점, 어두운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사이보그 소녀가 보여 주는 화려한 액션이 거장 제임스 카메론과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 콤비로 완성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개봉 당시 이슈가 됐다. 26세기의 지구는 모두가 살고 싶은 공중도시 자렘과 비루한 지상의 고철도시로 나뉜다. 혼란한 지상 세계의 의사 ‘이도’는 쓰레기 집하장에서 의식의 잃은 로봇 소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단연 구스타프 클림트가 떠오른다. 특유의 장식적인 아르누보 화풍은 금박의 사용으로 더욱 화려하게 빛났다. 그는 기존 회화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과 독창적인 기법을 통해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강조했고, 유혹적인 에로티시즘의 정서도 드러냈다. 그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키스’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을 들 수 있다. 특히 아델레의 초상화는 모델이자 화가의 뮤즈인 아델레 부인의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918년, 1차 대전이 끝난 세계는 비극이었다. 승패와 관계없이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온통 검은색 추모로 가득한 세상은 슬픔과 상실,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했다. 영화 ‘프란츠’는 그 시절 독일을 배경으로 한다. 전사한 약혼자 프란츠를 잊지 못한 안나와 프란츠의 부모는 존재할 수 없는 아들의 부재를 매일 확인하며 배회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사자(死者)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오늘은 과거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그런 무기력한 삶은 아들의 친구인 프랑스인 아드리앵의 출현으로 달라진다. 전쟁 전 프란츠가 파리에서 누렸
영화 ‘녹터널 애니멀즈’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야행성 동물이라는 타이틀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나아가 감독이 톰 포드라는 사실에 기대감이 증폭된다. 명품 패션 브랜드의 수석디자이너로 활약하며 구찌의 부활을 이끈 전설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는 2009년 그의 첫 영화 ‘싱글맨’을 대중에게 선보인 바 있다. 탁월한 영상미를 보여 준 첫 작품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차기작 ‘녹터널 애니멀즈’는 제73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매끈하지만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벨벳 원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와 제40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사이의 공통점은 치매를 앓았다는 것이다. 이 병은 경과가 매우 나빠서 첫 3년은 시간 개념이 흐려지고, 그 다음 3년은 공간 개념을 잃어 가고, 이후에는 사람을 못 알아보게 된다. 그러다 궁극에는 자신까지도 망각하게 되는 슬픈 질병이다. 치매는 노년층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으로 꼽히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환자 수도 증가하고 있다. 65세 노인의 10%, 85세의 20%가 앓고 있는 이 질환은 2018년 국내 10대 사망 원인으로 집계됐다. 2025년에는 국내 치매환자
가을을 수식하는 단어나 문구 중 반갑지 않은 표현이 등장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곡식은 풍성하게 익어간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을 대신해 ‘가을 불청객 미세먼지’, ‘미세먼지 시즌’이라는 용어가 일상화되고 있다. 실제로도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는 일이 드물어졌다. 곱게 물든 단풍 사이에 끼어든 뿌연 공기는 모처럼 즐기는 나들이의 흥을 깨고 건강도 위협한다. 미세먼지는 석탄, 석유 등의 화석연료를 태울 때나 공장, 자동차 등의 배출가스에서 많이 발생한다. 때문에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면 차량2부제나 노후 차량의 운행이 제한하기도
트렌치코트를 입고 낙엽이 떨어진 오솔길을 걸으며 사색에 빠지는 일이 자연스러운 고독의 계절 가을이 왔다. 고독이라는 단어는 뉘앙스에 따라 우수에 찬 멜랑콜리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창작의 원천이 되는 환경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혼자만의 시간인 고독(solitude)을 통해 인간은 가면을 벗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예술가 또한 홀로 지내는 시간 속에서 위대한 성취를 달성하기도 한다. 반면 외로운 고독(loneliness)은 의지할 데 없는 쓸쓸한 상태를 말한다. 고아(孤兒)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