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랫동안 감사한 마음으로 우러렀던 분이 계신다. 한 해를 마무리하거나 새로 시작할 때 지금의 나, 우리 가족을 있게 한 고마운 분 중 으뜸으로 떠오르는 분이시다. 유달리 병치레가 잦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심장이 벌렁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열로 경기를 하거나 감기 합병증으로 폐렴이 되어 입원을 하면 마음 여린 엄마는 안절부절 좌불안석이 되었다.
시간의 속도는 분명 일정할 텐데 12월의 시간은 유독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남은 시간은 얄팍한데 성과는 만족스럽지 않고, 그러다 보니 마음이 급해져서 일 것이다.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계획들은 군데군데 휑한 모습만 도드라져 보이고 움츠려든 가슴은 초조함으로 스트레스를 부른다. 거기다 송년모임은 줄줄이 있어 조금씩 피로가 쌓여간다. 한 해를 돌아보며 털
겨울이다. 자연은 생기를 속으로 뭉쳐서 최소한의 생명활동으로 에너지를 모은다. 소생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순천만에도 겨울이 찾아왔다.마른 공기를 가르며 겨울 진객이 오셨다. 흑두루미가 날아들면 순천만은 귀빈을 영접하느라고 조신하게 가슴을 풀어놓는다. 짧은 겨울 해가 시베리아를 에돌아 온 바람에 밀려 갈대밭에 포물선으로 떨어진다. 낙조로 붉어진 뻘에 새
한적한 길이 있습니다. 작은 꼬마가 폴짝폴짝 걸어오고 있습니다. 아이가 커 가면서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찾아옵니다. 작은 벌레도 들짐승도 찾아옵니다. 희미한 자취로 있던 길이 점점 또렷해집니다. 이따금씩 바람이 불고 비도 내립니다. 졸졸 개울물이 흐르고 눈 맑은 가재가 찾아옵니다. 비쳐드는 햇살이 온화합니다. 길은 넓어지고 주변의 나무와 풀이 무성해집니다.
‘인간이란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박민규의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가는 인간이 가진 복잡한 속성을 짧은 문장 안에 명쾌하게 풀어냈다.인간의 뇌는 우리 몸 총량의 2.5%에 지나지 않지만 에너지는 20%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만큼 복잡한 것이 인간이다. 사람 수만큼 다양한 것이 인간의
본의 아니게 모임의 총무를 맡게 됐다. 정례회나 경조사, 행사 등을 공지해 주는 문자를 보내면 무응답인 경우가 있다. 또 전화를 걸면 못 받거나 통화 중인 경우도 있어 직접 의사 확인이 안 된다. 누가 참석을 하는지 정확한 인원 체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해진다. 연락이 오지 않으면 재차 확인 전화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바쁘다 보면 잊어버리고
오대산 옛길을 걸었다. 터덜터덜 걷는 모임에서 이번 달에 정한 장소가 오대산 옛길이다. 상원사와 월정사가 있어 사철 등산객과 절을 찾는 불자들로 부산한 곳인데 나들이하기 최고의 계절이라 어김없이 사람들로 복잡했다. 우리는 등산이 주가 아니라 옛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바쁠 것 없이 여유롭게 하루를 걸으며 자연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다.오대산 옛길은 보부상
백일장 심사를 다녀왔다. 현장에서 시제를 발표하고 작품을 받아 심사를 하고 시상식까지 하루 종일 현장에 있었다. 수백 편의 작품을 읽고 심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눈도 피곤하고 머리도 복잡해지지만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나면 가슴이 출렁이면서 피곤했던 눈도 생기로 빛이 난다.초·중·고 학생부과 일반부까지 참가 대상이 전 연령대라 작품
요즘 TV프로그램 출연자는 온통 젊은이 판이다. 아이돌 가수가 음악프로를 장악한 지는 오래전 일이고 오락프로그램도 젊은 연예인들로 채워져 나이가 들면 예전에 인기가 좋았던 연예인들도 설 자리가 좁아진다. 세상이 온통 삶의 연륜이나 숙성된 지혜보다는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가벼움으로 들썩거리는 것 같다. 오랜 세월 기다려주는 인내 끝에 최고의 와인이 만들어지듯이
더운 여름날 고속버스에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딸과 함께 탄 아줌마 승객이 딸의 의자를 뒤로 눕혔다. 편하게 기대어 쉬면서 가라고 딸을 챙긴다. 20대 초반의 딸은 엄마의 보살핌과 시중이 익숙한 듯 섬김을 자연스럽게 받는다. 뒷좌석 손님이 의자를 조금만 세워줄 수 없느냐며 부탁을 한다. 날씨가 더워 앞좌석이 뒤로 끝까지 눕혀지니 공간이 좁아져 답답하고 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 우르르 성질 급하게 나가는 관객들 틈으로 스크린을 응시하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고 나면 불이 켜지면서 스크린은 잠시 쉰다. 짧은 몇 분의 시간이다. 다들 바쁜 세상인데, 혼자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거나 흠집을 찾아내려는 평론가이거나 아니면 정말 남아도는 잉여시간을 허비하고자 애를 쓰는 중이거나 이런 이유
은발이 기품 있어 보이는 그녀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눈빛이 맑았다.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인생 이야기를 풀면 누구나 소설 몇 권은 될 분량이다. 노년에 접어든 여성이라면 질곡은 더 깊고 구구절절 아린 사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제 그늘막에 앉아 쉬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해보고 싶다고 한다. 지금은 단내 나는 과일을 먹으며 시원한 바람 부는 자연에 묻
장맛비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는 유난한 장마라 강수량이 엄청나다. 비가 오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차분히 더 가라앉으면 조금씩 우울해진다. 휴일 딸애와 뒹굴거리다가 낮잠도 자다가 기분전환 겸 산보를 나갔다. 비는 소강상태라 우산을 접어들고 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우리 둘뿐 인적이 거의 없어 한적했다. 공원을 지름길로 가로질러 바삐 걸어가는 사람만 간혹 보였다
여성단체에서 중국 옌볜을 방문해 백두산과 두만강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도착해 짐을 풀고 쉬었다. 다음 날 백두산 탐방을 떠났다. 민족의 영산을 만나는 설렘으로 잠을 설쳤지만 정신은 맑아진다. ‘장백산’이라 새겨놓은 바위를 마주한 순간, 숙연해졌다. 백두산이다. 전체 면적의 1/3쯤이 중국 영토다.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에 위치
노(老)시인의 작시 음악회에 다녀왔다. 시인은 시 18편을 곡으로 만들어 칠순을 겸한 음악회를 열었다. 넓은 전원주택 1층에서 열린 음악회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 휴일 하루가 즐거웠다. 돌아오는 길에 사회를 맡아 음악회를 이끌었던 분과 언쟁이 있었다. 행사가 끝나면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완벽한 행사를 소원하지만 순도 100% 완벽은 항상 어려운
짬이 나면 혼자서 여행을 다닐 거야, 결심만 열심이고 실행은 멀었다. 매번 사정이 생기고 핑계가 만들어져 쉽지 않다. 적당히 용감해야 되고 적당히 무심해야 되고 적당히 부지런해야 되고 갖추어야 할 덕목(?)이 여러 가지였다. 작은 출발로 시작해 큰 걸음으로 성큼 나설 날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그렇게 몇 번 길을 떠났다. 운주사도 그 중 하나다.바람이 스산하게
몇 해 전에 미얀마 여행을 갔었다. 미얀마는 소승불교 나라로 자신의 수양에 게으름 피우지 않는 불심 깊은 사람들이 사는 불국토이다. 생활은 궁핍해도 자존심 강한 미얀마 사람들의 삶이 결코 부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소득이 높아지면 행복지수도 비례해 높아져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게 우리 삶이다. 풍요로운 물질에 개인의 삶을 최대한 존중하는 서구사회에
봉사활동에서 만난 영미 씨는 지적장애인이지만 나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다. 싫고 좋은 게 분명하고 가슴에 쌓아둔 먼지가 없어 명랑했다. 그녀는 풀꽃처럼 자신에게 충실했고 탓이 없이 당당했다. 부탁도 희로애락도 눈치보지 않고 자기 감정에 충실해 단순하지만 명쾌했다.주말 나들이 갔던 차량들이 도로를 메워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도로 위에서 오늘 하루를 돌아봤다. 꽃
주말에 서울서 내려온 친구와 인천투어를 했다. 사는 게 바빠 지척인 거리에 있으면서도 ‘한 번 보자.’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받았다. 물리적 거리로 치면 차로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곳이고 볼 일이 있어 가는 서울 나들이 길에는 시간이 없어 잠깐 얼굴 볼 짬을 내지 못했다. 오랜 세월 우정을 나눈 친구는 세월 따라 아슴푸레한 지난 시
몇 번의 꽃샘추위가 지나가고 천지에 봄꽃이 흐드러질 계절이다. 일기예보를 하는 기상캐스터가 꽃소식을 전한다. 제주도의 벚꽃은 25일쯤 피어날 것이고 북진하여 서울에 도달하는 시기가 4월 초순이라 한다.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이 펴진다.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주말을 전주 한옥마을에서 보냈다. 햇살 고운 동네는 야트막한 기와집과 걷기 좋은 골목이 이어져 있어 봄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