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한국농어촌공사로부터 사들인 김포매립지를 청라국제도시로 개발하면서 그 땅의 이용계획은 크게 바뀌었다. 첨단농업단지에서 금융을 핵으로 한 국제업무단지로 개발 방향을 틀면서 이미 예고된 상태였다. 투자유치용지 등 국제업무단지는 사실상 주택건설용지를 개발하기 위한 빌미에 지나지 않았다. LH는 주택건설용지를 팔아 국제업무단지의 기반시설에 재투자한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LH 입장에서 보면 매입과 기반시설로 투자한 돈을 가장 손쉽게 회수할 수 있는 길이었다. 이는 금세 현실로 검증됐다. 외국인 투자유치...
농업단지 조성이 목적이었던 농림부 산하 한국농어촌공사(옛 농어촌진흥공사)의 김포매립지 활용은 굴절의 연속이었다.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 실현 방안에 꺾이고, 청라경제자유구역 개발계획에 또다시 뒤틀렸던 것이다.땅 주인들이 한국농어촌공사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으로 바뀌면서 첨단농업을 축으로 한 스포츠·레저·관광단지 조성계획은 오간 데 없었다. 대신 되지도 않는 투자유치용지와 국제업무(금융)단지 등이 비
거짓으로 덧칠한 거대 음모를 부국(富國)의 길인 양 치장한 거간꾼과 투자자의 농단, 표(票)와 자리 보전에 눈 멀어 옳고 그름의 경계마저 허문 정치인과 공무원의 무능과 부패, 눈앞의 몰락 속에서도 인생 역전에 굶주려 한 탕의 올가미에 갇힌 일부 주민들의 탐욕. 그 집합체가 바로 에잇시티(8CITY)의 실체였다. 8CITY 계획 규모는 마카오의 3배인 79.5㎢에 달했다. 육지부 24㎢에, 해상부 55.5㎢이다. 그 형상은 두바이의 인공섬 팜주메이라와 닮은꼴로 짝퉁에 지나지 않았다. 해변을 따라 길이 14㎞의 일체형 튜브 구조인...
문화관광레저복합도시(에잇시티)를 끝으로 폐기된 용유·무의 개발사업에는 지금도 그 모략(謀略)의 먹이사슬이 은밀히 작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대 피해자는 어찌 보면 무의도와 실미도의 일부 땅을 사들인 뒤 복합리조트 개발에 나선 외국인 투자법인 쏠레어코리아㈜다.13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쏠레어코리아는 복합리조트 개발을 위해 실미도의 관리유형 변경(준보전→개발 가능)을 추진 중이다.실미도는 201...
민간기업이 한국농어촌공사(이하 공사)처럼 농경지 조성 목적인 김포매립지의 용도변경을 시도했더라면 분명 특혜로 몰렸을 법한 노릇이었다. 동아건설산업㈜(이하 동아)은 공사의 ‘김포매립지 토지이용계획 수립을 위한 학술 용역’ 발표가 있기 27개월 전인 1998년 4월 용도변경에 따른 특혜 해소 방안을 내놓았다. 전체 김포매립지 중 54.1%(667㏊)를 첨단 공단과 관광단지로 용도변경하고, 나머지 45.9%(567㏊)의 농지를 국가에 기부채납하겠다고 동아는 제안했다. 농림부는 동아 측 소유의 용도변경 토지(667㏊)에서 발생할 엄청...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 차원에서 동아건설산업㈜(이하 동아)의 김포매립지를 사들이자마자 용도변경을 토대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종전의 입장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농림부 산하 한국농어촌공사(옛 농어촌진흥공사, 이하 공사)는 국토연구원을 통해 기본 구상과 개발타당성을 검토한 ‘김포매립지 토지이용계획 수립을 위한 학술 용역’을 용역 의뢰 10개월 만인 2000년 7월 20일 내놓았다. 농림부가 공사를 통해 김포매립...
동아건설산업㈜(이하 동아)의 김포간척지는 조(兆) 단위 외국 자본 투자유치 허구의 원조 격이었다. 동아는 IMF 외환위기를 빌미로 실체조차 없는 외국 자본 40억 달러 유치를 내세워 정부에 농경지 조성용인 김포간척지의 용도변경을 압박했다. 동아는 준공인가가 떨어진 지 7년 뒤인 1998년 4월 10일, 6개월 안에 40억 달러를 유치해 10년간 김포간척지 1천262㏊를 홍콩식 자유도시로 개발하기로 투자중개사인 프라이스
"수백㎞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8년 만에 끝낸 동아건설산업㈜(이하 동아)이 고작 10.6㎞짜리 용수로 공사를 11년째 질질 끌고 있다. 동아는 진정 김포간척지를 농경지로 조성할 의지가 있는가?" 1998년 4월 17일 오후 농림부 장관실에서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에게 한 질책이었다. 최 전 회장이 일주일 뒤 서명할 40억 달러 규모의 외자유치 양해각서 내용을 내놓으면서 김포간척지의 용도변경 가능성을 타진하자 김 전 장관은 "가당치 않다"며 일침을 놓았다. 최 전 회장은 이 자리에서 양해각서 체결 취...
영세 노역자들이 자조근로사업으로 메운 청라도 일대를 포함해 공유수면 매립면허를 차지한 동아건설산업㈜(이하 동아)의 김포 간척사업은 정권의 비호 아래 시종일관 특혜로 얼룩졌다. 동아는 영세 노역자들이 쌓은 뒤 국가 소유로 넘어간 제방을 감정가의 20%도 채 안 되는 헐값에 사들이고, 조성한 농지를 투자사업비의 8배 가까이 비싼 값에 정부에 팔아넘겼다. 정부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1978년 8월 16일 민간기
동아건설산업㈜(이하 동아)의 김포 간척사업은 동아그룹 파멸의 서막이었다. 동아는 정부의 민간기업 참여에 따른 대규모 간척사업 방침으로 1980년 1월 14일 농경지 조성 목적으로 김포간척지(3천800㏊) 매립면허를 얻었다. 공장용지 조성 목적이었던 청라도 인근 공유수면(1천27㏊)이 매립면허가 취소(1972년 10월 31일)된 지 8년 만이다. 김포 간척지의 토대였던 청라도 인근 공유수면 매립 용도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수차례 바뀌었다. 최초 매립면허 당시인 1964년 9월 9일에는 수산양식(면적 1천275㏊)이 그 목적이었다...
이명수 봉덕학원 전 이사장이 매립면허권을 잃은 뒤에도 땅을 찾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밑바닥에는 땅 소유를 향한 그의 집요함과 사실관계를 제멋대로 재단한 정부의 무관심이 깔려 있다. 이명수 전 이사장이 농림수산부로부터 처음(1964년 9월 9일) 얻은 청라도 일대 공유수면(1천275㏊) 매립면허권은 사실 공사 시작 7년 만에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공유수면 매립면허 승인권이 농림수산부에서 건설부로 넘어가고, 청라도 일대 공유수면 매립 목적도 수산양식에서 공장 부지 조성으로 바뀐 뒤였다. 이명수 전 이사장은 매립 목적...
세상은 가진 자 편이었다. 정부도 사법부도 몸을 던져 제방을 막고 터를 일군 ‘밀가루’ 노역자들에게 법으로 정한 약속된 땅조차 없을 만큼 매몰찼다. 하지만 노역자들의 품삯으로 나온 정부 관리의 밀가루 배급량을 부풀린 뒤 빼돌렸던 매립권자에게는 땅 수십만㎡의 소유를 허용할 정도로 너그러웠다.청라도 최초 매립권자 이명수(1991년 사망 당시 72세)봉덕학원 전 이사장의 아들 등 유족들은 1992년 10월 27일 동아건설...
청라도 매립사업은 인천시 서구 청라 달튼외국인학교의 법인인 봉덕학원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명수(1991년 사망 당시 72세)전 봉덕학원 이사장은 부인 이봉덕(2010년 사망 당시 89세)전 이사장 외 1명(김모형 (재)서울성로원 이사장)과 함께 1964년 9월 9일 청라도 공유수면(1천275㏊) 매립면허권을 농림수산부로부터 따냈다. 사실 이명수 전 이사장의 청라도 매립면허권은 일본서 수산양식업을 배운 김옥창(2000년 사망 당시 71세)씨의 사업권을 넘겨받은 것이었다. 김옥창 씨는 이명수 전 이사장이 매립면허권을 따내기 전...
자조근로사업장 청라도 매립 노역자들은 ‘재주를 부리는 곰’이었다. ‘돈을 번 수혜자’는 매립권자 이명수(1991년 사망 당시 72세)전 이사장의 학교법인 봉덕학원이었다. 청라도 매립사업에 동원된 노역자들과의 토지(9천900㎡) 분양 약속은 오간 데 없었다. 대신 이명수 전 이사장, 그의 부인인 이봉덕(2010년 사망 당시 89세)초대 이사장과 이사의 청라 땅 출연과 증여로 봉덕학원과 득양학원의 수익용 부동산만 늘어난 꼴이...
"영세 근로자들에게 땅을 주기로 매립사업자들이 맺은 계약은 정부의 규정에 근거한 것이지 결코 사업자 개인 간의 거래가 아니었습니다." 윤차웅(93·인천시 중구 중산동)씨는 억울함을 내비쳤다. 52년 전 청라도 매립사업의 토지 분배 문제가 해결 기미 없이 단지 민간인 간의 계약 따위로 폄하되는 현실에 대한 비통함에서다. 윤 씨는 청라도 매립지(1천275㏊) 공사 현장에서 화약주임과 현장주임을 맡았던 ‘청라 매립의 살아있는 역사’다. 처음부터 끝까지 10여 년을 청라도 매립사업과 함께했다. "청라도 매립사업은 엄연한 자조근로사업장...
자조근로사업장으로 시작한 청라도 매립사업은 그 목적을 잃고 점차 가진 자들의 수탈 대상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목구멍의 풀칠용으로 영세 근로자에게 배급해야만 하는 양곡(밀가루)의 절반 이상이 돈으로 세탁돼 엉뚱한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매립이 준공되면 땅 9천900㎡를 가질 수 있다는 사업자와 정부의 공언에 영세 근로자는 죽을 힘을 다해 흙과 돌을 날라 제방을 쌓고 또 쌓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땅의 희망’은 잡히...
자조근로사업장이었던 청라 매립사업에는 정착과 자립으로 통하는 ‘자조(自助)’는 없었다. 다만 ‘480 밀가루’로 굶주린 배를 달랜 곤궁한 자들의 ‘근로(勤勞)’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가난한 자들의 죽을 둥 살 둥한 노역(勞役)이 일군 간척의 땅은 힘 있고 가진 자들의 차지였다. 빈자(貧者)들에게는 생명 줄과 같았던 미국의 원조와 정부의 구호 양곡은 미끼였다. 1969년 7월 18일 박효익 인천시 북구청장(갑)은 청라
헐벗고 굶주렸던 1960년 대 초였다. 인천시 북구 경서동 국가 소유의 섬에 살고 있던 청라도 50여 가구의 가난은 하염없었다. 가난과 진정으로 사귈 수 없는 자들이 빈곤의 문제를 꺼내거나 배고픔을 동정의 꼬투리로 삼으려는 어설픈 몸짓을 한순간에 죄악으로 만들어 버리는 처절한 가난이었다. 가난을 자신들의 운명 안으로 담담이 받아들인 채 가난으로써 삶의 내용을 채워가던 청라도 사람들에게 1960년 3월 귀인(貴人)이 찾아들었다. 일본서 수산업을 했던 김옥창(2000년 사망)씨와 그의 동업자 윤차웅(93·인천시 중구 중산동)씨였다...
서해안 북부의 지도를 바꿔 놓은 청라 매립지. 그 땅에는 영욕의 반세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굴절된 현대사의 아픔도 묻혀 있다. 가진 자들에게는 끝 모를 허기(虛氣)를 채우는 탐욕의 땅이었고, 없는 자들에게는 하염없는 배고픔 속으로 몰아넣는 수렁이었다. 애초 청라 매립지는 송곳 하나 꽂을 땅조차 없는 가난한 자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갯벌을 매립한 땅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전국에서 모인 빈자(貧者...
이토록 터가 센 시절이 또 있었으랴. 올라올 것 없는 텅 빈 물속에 속절없이 그물만 연신 던지는 빈곤의 시대다. 누가 그랬던가. 인생의 황금기는 지나간 무지의 젊은 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늙어 가는 미래에 있다고. 누군가는 분명 토를 달 것이다. 늙어 가는 것이 황금기라면 어찌 우리의 미래는 이토록 서럽단 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곁을 둘러싼 밖의 세상이 녹록지 않다. 지난 7월 한국은행이 내놓은 경기전망 보고